[세상만사] 섣불리 얘기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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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국어사전에서 단어의 뜻이나 쓰임을 찾아볼 때가 많다.
저런 상황이 닥치면 나도 귀도처럼 침착하고 의연하고 용감할 수 있을까.
재치와 순발력으로, 천진한 미소로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
"어떤 끔찍한 일이라도 가족이 함께하면 극복할 수 있다" "일은 부탁해도 아버지 역할은 부탁할 수 없다" "힘들 때는 웃어버려" "계획대로 가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야". 정신없는 이 집안은 신형만의 의지와 노력으로 지탱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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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국어사전에서 단어의 뜻이나 쓰임을 찾아볼 때가 많다. 모국어인데도 생소하고 어려운 말이 적지 않다. 적확한 표현을 적재적소에 쓰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인물이나 사건, 콘텐츠를 검색하면서도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어찌나 많은지 가끔은 스스로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이 신기해 보인다.
어릴 때 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9)는 그저 슬펐다. 다섯 살 조슈아(조르지오 칸타리니)의 감정에 몰입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나 엄마도 다시 만났는데 아빠는 죽고 없다니, 마음이 아팠다. 독일군에게 총살당하기 직전 아들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걸어가는 귀도(로베르토 베니니)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얼마 전 영화를 다시 봤을 때 감상은 완전히 달랐다. 저런 상황이 닥치면 나도 귀도처럼 침착하고 의연하고 용감할 수 있을까. 재치와 순발력으로, 천진한 미소로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 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할 수 있을까. 로베르토 베니니의 연기와 연출이 놀라웠다. 죽음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 그런 행동을 한 건 너무나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조슈아가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된 게 다행스러웠다. 비록 아빠를 잃었지만.
이제 고길동과 짱구 아빠 신형만에 대해 얘기해보자. 김수정 작가는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을 30대 후반~40대 초반으로 설정했다. 고길동은 서울 쌍문동에 사는 중견기업 과장으로 아내와 아들, 딸에 조카 희동이와 양동이까지 맡아 키우면서 둘리 일당에게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한다.
아무리 1980년대라지만 외벌이 만년과장이 ‘4인 가족 플러스 알파’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녹록지 않다. 아들딸이 제법 컸는데 조카들을 떠맡아 육아 난이도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둘리 일당은 세간살이를 부수기 일쑤다. 고길동은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이며 걸핏하면 화를 내지만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다. 휴머니즘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가장 노릇을 한다.
그간 작품 속 최고 대인배로 여겨져 온 건 아내 박정자였지만, 빌런 같았던 고길동이 지금은 거의 성인(聖人)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지난 8일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아무리 그 시대였더라도 조카들과 둘리 일당을 데리고 산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40대 중반인 짱구 아빠 신형만은 다섯 살 아들 짱구, 이제 막 기어다니는 딸 짱아를 뒀다. 중견기업 영업부 계장인데, 35년짜리 장기대출로 집을 샀다. 짱구와 짱아는 사고뭉치이고, 늘 월급이 적다며 타박하는 아내 봉미선은 자주 충동구매를 한다. 신형만은 무능하고 찌질하고 철없어 보였지만 뜯어보면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가정적인 사람이다. “어떤 끔찍한 일이라도 가족이 함께하면 극복할 수 있다” “일은 부탁해도 아버지 역할은 부탁할 수 없다” “힘들 때는 웃어버려” “계획대로 가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야”…. 정신없는 이 집안은 신형만의 의지와 노력으로 지탱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정의 달을 맞아 80~90년대 애니메이션들이 잇달아 개봉하면서 콘텐츠의 재해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예전 만화를 보며 2020년대의 우리는 또 다른 것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대와 시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은 콘텐츠가 주는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품을 공개하면서 ‘독자나 관객들의 해석에 맡기고 싶다’고 하는 창작자들의 말이 새삼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대중은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무언가에 대한 해석을 섣불리 얘기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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