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19) 장애인 복지 불모지 한국에 인식개선의 ‘밀알’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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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1973년에는 한국 지성사회가 민주화와 인권운동으로 뜨거웠다.
얼마 후 강사로 나간 총신대에서 내 강의를 들은 학생 가운데 시각 장애인 이재서(총신대 현 총장), 그의 동료 정형석(밀알복지재단 상임이사), 강원호, 정택정, 유원식(기아대책 회장) 등 몇 사람이 1979년 장애인 선교와 복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밀알'이란 단체를 만들어 나에게 자문위원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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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보다 더 소외된 장애인 복지에 관심
장애인들의 권익 위해 시간·열정 쏟아
귀국한 1973년에는 한국 지성사회가 민주화와 인권운동으로 뜨거웠다. 지식인이라면 모두 우리 사회에 가장 소외된 민중들의 권리 회복과 옹호에 앞장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넘쳐흘렀고,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이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라 했다.
나는 1960~70년대 유럽과 미국의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운동(SDS)’이 주도한 반자본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그 이론적 배경으로 작용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 Marcuse)의 ‘일차원적 인간’을 탐독하고 관련 논문도 한 편 썼다. 그래서인지 한국 지성사회의 움직임이 그렇게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도 한국에서 고통을 가장 많이 겪는 사람들이 과연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인지 의심이 생겼다.
나는 그들보다는 장애인들이 더 많은 고통과 서러움을 당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당시 한국에는 장애인에 대한 어떤 복지도 존재하지 않았고, 국민 인식은 원시적이었다. 가정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가문의 수치로 여길 정도였다.
그래서 외국어대 기독 교수들과 함께 장애인들을 돌보는 단체들을 찾아다녔는데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 후 강사로 나간 총신대에서 내 강의를 들은 학생 가운데 시각 장애인 이재서(총신대 현 총장), 그의 동료 정형석(밀알복지재단 상임이사), 강원호, 정택정, 유원식(기아대책 회장) 등 몇 사람이 1979년 장애인 선교와 복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밀알’이란 단체를 만들어 나에게 자문위원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시작한 밀알 활동은 세계밀알연합회, 밀알복지법인, 밀알선교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러면서 이 일은 강의 다음으로 나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은 사역이 되고 말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밀알복지법인 이사장으로 섬기던 1996년 자폐 아동을 위한 밀알학교 설립이었다. 장애아 특수학교를 기피시설로 간주해서 지역 주민들이 건설공사를 심하게 방해했다. 주민대표들이 나의 연구실에 여러 번 쳐들어 와서 회유, 협박, 저주를 반복했다.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바람에 검찰 조사도 받았다.
자원봉사를 해 준 김앤장 소속 김주영 변호사가 제기한 공사방해중지 임시 처분 신청에서 승소하면서 간신히 건축을 마칠 수 있었는데, 그 판결은 주민들의 장애인 시설 반대와 관련된 첫 번째 재판으로 대부분의 일간지가 사설에서 중요하게 취급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주민들이 밀알학교에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관계가 회복되었고 밀알학교는 한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특수학교로 인정받을 만큼 잘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의 장애인들을 위해 밀알복지재단에 11억원을 기부해 ‘장애인 권익기금’을 마련했고, 장애인 활동이 계기가 돼 쓴 철학서 ‘고통받는 인간’은 서울대 출판부에서 올해 13쇄를 찍었다. 장애인 권익 활동은 나의 삶을 좀 더 의미있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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