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로 가야
‘공(功)과 과(過)가 공존한다.’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집단에 대한 평가는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대기업집단의 부정적 측면인 과를 최소화해 한국 경제의 성장에 지속해서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정책 목표다. 과거 대기업집단 정책은 출자 총액을 제한하는 등 정부가 직접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책도 변화했다. 공시 제도를 강화해 시장에 의한 자율적인 감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새 정부의 대기업집단 정책 방향도 기존의 진화 방향과 다르지 않다. 기업이 과도하게 짊어진 부담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엔 법을 엄정하게 집행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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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집단 82개 공시대상 지정
공정경쟁 저해 행위는 감시 강화
공시 대상 지정 기준도 조정 검토
」
대기업집단 자신도 변화하고 있다. 지배구조의 규범 체계를 중시하는 국제적 흐름에 맞춰 출자 구조가 단순하고 법적 책임이 명확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견제·감시 기능이 충실하게 작동할 수 있는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게 최근 대기업집단의 모습이다.
공정위는 지난 1일 대기업집단 82개를 ‘공시 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이들 중 자산 총액이 10조원을 넘는 48개 집단은 ‘상호 출자 제한 기업집단’이다. 이를 통해 올해 대기업집단 정책의 적용 대상을 확정했다. 이들은 부당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공시 의무, 사익 편취 행위 금지,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금지 등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게 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공정위는 ‘원칙이 바로 선 공정한 시장경제 조성’을 기조로 삼고, 대기업집단 정책 합리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말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동일인(총수)의 친족 범위를 혈족 6촌, 인척 4촌 이내에서 혈족 4촌, 인척 3촌 이내로 축소했다. 동일인은 친족의 주식 소유 현황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사회 통념에 비해 넓은 친족 범위가 문제로 지적됐다. 친족 범위 조정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연속 지정된 총수 있는 64개 집단의 친족 수는 6555명에서 3325명으로 49.3% 감소했다.
공시 제도를 대폭 개선해 기업의 부담을 합리적 수준으로 낮췄다. 다른 한편으론 경제 주체들이 기업과 시장을 감시하는 데 불필요한 정보는 보지 않아도 되는 효과가 있다.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주회사 CVC(기업형 벤처캐피탈) 제도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 결과 11개 지주회사가 벤처 투자사를 보유하게 됐다.
감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대기업집단 총수가 2세에게 지배력을 승계하기 위해 편법으로 부를 이전하는 행위를 제재했다. 계열회사끼리 부당 지원을 통해 시장을 잠식하고, 독립·중소기업의 경쟁 기반을 침해하는 행위 등 위법한 부당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계속해왔다.
앞으로도 공정위는 환경 변화에 맞춰 대기업집단 정책을 합리화하고, 규정을 구체화하는 노력을 계속해 공정한 시장경제를 조성할 방침이다. 대기업집단 지정의 출발점인 동일인 판단 기준을 마련해 예측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경제 규모가 성장한 만큼 공시 대상 기업집단의 지정 기준 조정 방안도 검토한다.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관련한 부당성 판단 기준을 정비하고, 내부거래 규제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공시 제도를 더 합리화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한다.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부당 지원 행위에 대한 감시·제재는 강화한다. 기업이 스스로 공정거래 규범을 준수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경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공정거래 자율 준수 프로그램을 법제화하는 등 공정 문화 확산을 위한 지원도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시장의 역동성과 혁신 경쟁을 보호하기 위해 그 나라 특성과 경제 환경에 최적화한 공정거래 규범을 갖추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집단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을 고려할 때 대기업집단 정책의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가야 한다. 공정위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기업·학계 등과 소통하면서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대·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데 필요한 공정경쟁 기반을 마련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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