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의 레저터치] ‘조금새끼’ 생일도 제삿날도 같은 그들
갯마을에선 여전히 음력으로 산다. 날마다 모양이 변하는 달에 따라 바다도 날마다 달라져서다. 갯마을에선 이를 ‘물때’라 부른다. 보름달이나 초승달이 뜨는 날이 사리 물때고, 반달이 뜨는 날은 조금 물때다.
어부가 바다에 나가는 날도 물때에 따라 정해진다. 예컨대 사리 물때가 되면, 다시 말해 보름달이나 초승달이 뜨면 노련한 어부도 바다에 나가길 주저한다. 바다가 너무 험해져서다. 반달이 떠도 바다에 안 나간다. 못 나가는 게 아니라 안 나간다. 바다가 너무 조용해서다. 바다가 죽으면 물고기가 없다.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목포 시인 김선태의 ‘조금새끼’라는 시에서 인용했다. 전남 목포에 가면 옛 째보선창 위 갯가 언덕에 비단처럼 햇볕이 비치는 따뜻한 동네 ‘온금동(溫錦洞)’이 있다. 옛 이름은 ‘다순구미’다. 따뜻한 후미진 곳이라는 뜻이다. 째보선창은 항구 목포의 원적지 같은 곳이다. 바닷물이 양쪽에서 들어오는 포구여서 째보선창이다.
손혜원 전 의원으로 유명세를 치른 목포역 앞 근대화거리는 일제강점기 휘황찬란한 일본인 거주 지역이었고, 째보선창 위 온금동과 옆동네 서산동은 게딱지 같은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선인 마을이었다. 근대화거리는 밤낮으로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지만, 온금동은 사는 사람도 드물고 찾는 사람도 뜸하다. 조금 물때가 돼 바다에서 돌아온 다순구미 어부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오랜만에 얼굴 마주한 아내와 회포 푸는 일밖에. 허구한 날 바다 바라보며 속만 태우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물때가 되면 다순구미 아낙들은 속옷을 빨고 목욕을 했다. 그렇게 조금 물때가 지나고 열 달이 차면, 아기들 울음소리가 다순구미 좁은 골목에 울려 퍼졌다. 가난한 갯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평생을 바다에서 산 아비를 따라 바다로 나가는 것밖에. 바다에 나간 아이들도, 제 아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큰바람이 불고 나면 다 같이 돌아오지 않았다. 목포 다순구미의 조금새끼들은 하여 생일도 같고 제삿날도 같다.
오늘은 음력 삼월 스무사흘, 조금 물때다. 오늘 밤하늘엔 반달이 뜨고, 바다는 죽은 듯이 잠잠할 테다. 이제 온금동엔 조금 물때가 돌아와도 조기 한가득 싣고 들어오는 남편도 없고, 부푼 가슴 안고 빨래 너는 아내도 없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인 가파른 골목엔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벽화 몇 점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손민호 레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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