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루키 vs 탁신 딸 vs 군부 상징
‘군정 연장이냐, 민정 복귀냐’의 갈림길에 선 5·14 태국 총선이 안갯속이다. 반(反)군부 진영에선 탁신 친나왓(2001~2006년 재임)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37) 대표가 이끄는 프아타이당과 가장 개혁적 정당으로 꼽히는 전진당(MFP)이 정당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2014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쁘라윳 짠오차(69) 현 총리가 이끄는 루엄타이쌍찻당(RTSC)은 3위로 뒤처졌다.
일본 닛케이 아시아 등은 이번 태국 총선의 향방은 MZ세대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했다. 유권자 5200만 명 중 42세 미만이 42%에 이른다. 싱가포르 매체 스트레이트타임스는 “과거 50~60대 남성이 주류였던 태국 정치 판도에 세대교체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젊은 표심은 야권, 특히 피타 림짜른닷(42) 대표가 이끄는 전진당으로 쏠리고 있다. 피타 대표는 준수한 호감형 외모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영학 석사와 하버드 행정대학원 공공정책 석사를 마친 엘리트다. 2019년 전진당의 전신인 퓨처포워드당의 하원의원에 선출되면서 정계 입문했다. 그 전엔 ‘그랩 타일랜드’라는 기술 스타트업 등에서 임원으로 사업가로 경력을 쌓았다.
그는 군부의 통치 기간을 “태국의 잃어버린 10년”이라며 “태국은 지금 교차점에 있다. 한쪽엔 우리를 완전한 민주주의의 나라로 변모시킬 길이 있다”며 전진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이번 총선을 “세대적 선택”이라 강조하며 동성결혼 합법화, 징병제 폐지, 군부 권한 축소, 왕실 모독죄(왕실을 모독하면 최고 징역 15년형) 폐지, 최저임금 인상 등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BBC는 “군부를 지지하던 일부 기성세대조차 ‘이제 군인이 아닌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인물이 통치해야 한다’며 피타 대표 지지자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태국 매체 네이션의 설문조사 결과, 전진당의 정당 지지율은 제1야당인 프아타이당(39.83%)에 이어 2위(29.18%)다. 쁘라윳 총리의 RTSC(7.45%)는 3위에 그쳤다.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선 피타 대표가 29.37%로 1위였다.
그러자 프아타이당에 비상이 걸렸다. 정치 신인임에도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유력한 차기 총리로 주목받아온 패통탄 대표가 2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제왕절개 수술로 둘째 아이 출산 이후 거리 유세를 멈추면서 상승세가 꺾인 것으로 분석된다.
쁘라윳 총리가 이끄는 RTSC에 대한 지지율은 야권에 못 미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코로나19에 대한 미흡한 대처, 치솟는 생활비, 기록적인 가계 부채, 정체된 임금 등 잇따른 정책 실패가 국민의 원성을 샀다고 전했다.
다만 태국 선거법에 따라, RTSC가 선거에 패하더라도 ‘군정 연장’이 가능하다. 쁘라윳 총리는 2014년 쿠데타 직후 헌법을 개정해 상원 250석을 군부가 지명하고, 하원 500석만 선거로 선출하게 했다. 총리는 상·하 양원(750석)의 과반(376석) 득표로 결정된다. 결국 총리 추대를 위한 ‘매직 넘버’가 군부엔 126석, 야당엔 376석인 셈이다.
야권이 연정을 통해 하원 과반을 달성하고 정권교체에 성공해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전부 무효로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태국 군부는 1932년 이후 19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바 있다.
김선미·박형수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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