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카’ 김건우 “난 슬로 스타터…올해도 여름에 더 잘할 것”
시즌 개막 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대를 받았던 전차군단의 봄은 씁쓸했다. 10승8패, 5위로 마무리한 정규 리그. 2라운드에서 젠지, 3라운드에서 KT에 연이어 패배하며 일찌감치 짐을 싼 플레이오프. 우승후보로까지 꼽혔던 이들이 받아들이기엔 무척이나 초라한 성적표였다.
현재 전차군단은 와신상담 중이다. 특히나 지난해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으로 최고 주가를 기록한 뒤 한화생명으로 온 ‘제카’ 김건우는 봄 동안 상처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을 혹독하게 단련 중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팀 훈련장인 ‘캠프 원’에서 김건우를 만났다. 그는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안 했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빨리 시즌을 치르고 싶은 마음 뿐”이라면서 “서머 시즌을 열심히 치를 수 있도록 몸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근력 운동과 식단 관리를 병행해서 5㎏가량 체중을 감량했다.
또 원래 자기 전에 누워서 휴대 전화를 오랫동안 쓰는 습관이 있었다는 그는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을 깜빡이게 되니까 집중력이 떨어지더라. 경기력에 지장이 생기지 않게 나쁜 습관을 없애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요즘엔 자기 전 휴대폰을 멀리한다”고 말했다.
한화생명이 올해 거둔 10승8패의 성적은 지난해 김건우가 DRX에서 기록한 성적(11승7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건우는 “스스로 작년보다 성장했다고 느꼈는데 결과가 작년과 비슷하다 보니 불만족스럽고 아쉽다. 지난 1년간 코칭스태프로부터, 팀원들로부터, 승리와 패배로부터 배운 것이 각각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김건우는 자신도, 팀도 메타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난 시즌을 복기했다. 그는 “LoL은 변수가 많은 게임인데,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유연한 플레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높은 라인전 체급이란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 다이브, 오브젝트 설계, 상대 정글 진입 시도 등 주도권을 이용하지 못했던 점도 아쉽다”고 설명했다.
한화생명은 뛰어난 라이너들이 있음에도 후반 게임을 과도하게 선호한단 평가를 시즌 내내 들었다. 이와 관련해 김건우는 “사실 한화생명이 시즌 후반부에는 최단 시간 승리 기록도 세우는 등 빠른 게임도 했는데, 카사딘을 선호해서 그런 평가가 따라온 것 같다”면서도 “이제 와서 부정하는 것은 의미 없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팀의 원거리 딜러가 ’바이퍼’ 박도현 아닌가. 나 또한 후반 집중력과 한타에 자신감이 있다. 그래서 팀이 후반 게임을 지향한 측면도 있다”면서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메이지보다 애니·아리처럼 초반 교전이나 오브젝트 싸움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챔피언이 더 메타에 어울렸던 것 같다. 메타를 잘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도란의 방패’ 너프가 그의 캐리력을 깎았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도 ‘패자는 말이 없다’는 같은 스탠스를 유지했다. 김건우는 “내가 도란의 방패와 어울리는 아칼리·사일러스를 잘 썼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나는 아이템 너프의 영향을 크게 체감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 평가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건우는 사일러스·아칼리가 시즌 후반부에 리그에서 종적을 감춘 게 아이템 너프보다는 애니·아리로 대표되는 로밍형 미드라이너들의 등장과 연관이 있다고 봤다. 그는 “사일러스·아칼리는 라인을 받아먹는 챔피언들이어서 아리나 애니 상대로 로밍 턴을 쉽게 내주게 된다”면서 “그들 상대로 턴을 맞추기가 힘들어서 메타에서 밀려났다”고 전했다.
한화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희망을 보기도 했다. 이들은 1라운드에서 디플러스 기아를 꺾었다. 김건우는 두 가지 승인이 있었다고 봤다. 첫 번째는 ‘빅 게임 헌터’로 불리는 ‘킹겐’ 황성훈의 큰 무대 활약상이고, 두 번째는 플레이오프에 맞춰 바꾼 생활 패턴이다.
김건우는 “플레이오프는 평소보다 2시간 빠른 오후 3시에 경기를 시작했다. 원래 우리는 새벽 3~4시까지 게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후 1시에 일어나는 생활 패턴이 익숙한데, 플레이오프 일주일 전부터는 2시간씩 일찍 자고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다. 2시간 동안 밴픽 회의나 아이디어 제시를 하면서 오후 3시에 가장 머릿속이 맑은 컨디션을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롤드컵 결승전에 이어 이번 스프링 시즌 플레이오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 황성훈과 달리, 자신은 플레이오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김건우는 “다전제는 4·5세트가 중요하다. 승부는 그때부터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면서 “1~3세트를 못했어도 깔끔하게 털어내고 4·5세트에 임해야 했는데, 지난 젠지전과 KT전에선 그러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건우는 데뷔 후 매년 스프링보다 서머 시즌에 좋은 성적을 기록해왔다. 작년엔 정규 리그 4위에서 롤드컵 우승까지 등반했다. 그는 “매년 그래왔듯 올여름에도 성장해 보이겠다. 개인적으로 지난 스프링 시즌은 후회와 아쉬움이 남았다”면서 “서머 시즌엔 그런 것들이 남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화생명이 서머 시즌에 우승하기 위해선 메타 적응력과 상황 변화에 따른 순발력이 중요할 거예요. 서로의 장점으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도 있어야 하고요. 스프링 시즌에 못했던 오브젝트 싸움도 잘할 수 있도록 완전히 팀의 스타일을 바꿔오겠습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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