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출국

2023. 5. 1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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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 보려구요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들키지 않으려구요

만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안녕, 하는 말은 비행기를 닮았어요
날렵하고 매끄러운 금속 같아요

언제부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방방곡곡 병실에 누어
작별의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없는 동안에도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우리는 이미 다정한 비밀을 나누어 가졌어요

물로 닦으면 숨은 글자가 드러나는 옛날 문서처럼
그것은 나의 출입국증명서에 은밀히 기록됩니다

이제 비행기를 타려구요
낡고 지친 마음은 들키지 않으려구요

몇 권째인지 모를 푸른 여권을 들고

당신이 잠든 사이
나는 다녀오겠습니다

-채인숙 시집 ‘여름 가고 여름’ 중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한 채인숙 시인의 첫 시집. 시인은 지난 20여년간 여권을 몇 권째 교체하면서 한국을 드나들었던 모양이다. 이 시는 출국 비행기를 탈 때의 마음을 묘사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다정한 비밀을 나누고, 그러나 그들에게 자신의 "낡고 지친 마음"이 들키기 전에 떠나야 한다. 그 사이를 다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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