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질병코드로만 분류할 때 벌어지는 일 [변방에서 안방으로 : 일하는 사람책]

최문희 2023. 5. 11. 18: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과 전문의이자 인류학 연구자 이기병, <연결된 고통>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고정미 기자]

작년 가을, 대형병원을 들락거렸다. 혼잡한 서울 거리, 청소노동자의 근로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플래카드, 주차요원들을 지나자 난생처음 보는 대규모의 암병원 입구가 나타났다. 키오스크에서 진료 예약증을 받아 화면에 뜬 환자들의 이름을 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같은 의사에게 진료받을 환우의 이름들이 눈에 익을 즈음이었을까. 약속한 진료 시간보다 1시간가량 더 기다린 끝에 대기석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이름이 불린 뒤엔 한 가지 질문에 AI처럼 답했다. 그래야 진료실로 갈 수 있으니까. 그건 숫자로 이뤄진 나의 '환자 코드'였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들은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의사들은 때때로 골똘하거나 무심한 표정으로 처방을 내렸다. 진료를 보는 시간은 3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대기 환자는 수두룩했다.

병명이 묘연한 나의 질병코드는 분류하기 힘든 그 무엇이었고, 애당초 진료 예약 전 A과에 배정됐다가 B과로, 다시 A과로 진료과목이 이동하는 탓에 피로가 누적돼 있었다. 축구장보다 큰 병원에서 나는 이어달리기를 하는 선수들의 손에 들린 배턴이 된 기분이었다. 조직검사, 초음파검사 등을 거친 끝에 드디어 '병명 확정.'

진료실 안 우리의 소통은 충분한가?
 
ⓒ 고정미
 
나는 그곳에서 아픈 환자이기보다 '확정돼야 할 질병과목'에 가까웠다. 몇 개월을 다닌 끝에야 나의 질병이 생활하며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의 것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쏟아부은 시간과 치료비를 고려하면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내과전문의이자 인류학 연구자인 이기병이 쓴 <연결된 고통>을 만났다.

저자는 4년간의 레지던트 과정을 밟은 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아래 '외노의원')에서 공중보건의로 3년간 복무했다. 그가 일한 병원은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국내 최초의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료기관. 그곳에서 그는 조금 낯선 이웃들의 인생 궤적과 고통을 만난다.

조선족부터 동남아시아, 에티오피아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민을 만나며 저자는 그들이 병원에 '내원하기 전'과 '그 후의 시간'을 추적해간다. 환자들은 늘 여러 군데가 아프다고 호소했으므로(일순간 언제나 몸 구석구석이 아프다고 호소했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고통의 근원을 촘촘하게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는 진료현장에서 그동안 빠트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환자들에게)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화가 났을지언정,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직시한다. 저자는 낫기 위해 찾아온 환자들을 단지 질병코드로 분류하길 중단한다.
 
"환자의 증상과 질환이 어떤 역사적 배경의 영향을 받고, 어떤 고통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모른다면 진료현장은 언제나 불충분하다. 내 불편함의 원인은 조선족 환자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증상의 나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질환에 얽힌 삶의 서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나의 무지 때문이었다."

그의 무지는 생면부지의 환자들을 빠른 시간 안에 진료해야 한다는 압박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 그는 코트디부아르, 가나 혹은 중국과 네팔, 태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해 온 개개인 삶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이주민에게 가하는 '편견'이 의료 진단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도 체득한다. 환자 고유한 '삶 이야기'를 찬찬히 들으며 경청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어느 날, 어렵사리 병원에 들른 환자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을 시작한 자신을 발견한다. "현대의학의 진단체계보다 정확하게" 말하곤 하는 환자의 '몸'에서 비롯된 고통에 조응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독자의 조응으로도 이어졌다. 내 증세를 골똘히 살피며 2차 병원 소견서를 써줬던 마을 의사, 저녁 인터뷰를 앞두고 두통이 심해 점심시간 수액을 맞으러 간 의료협동조합(무지개의원)에서 이불을 덮어줬던 간호사의 얼굴. 모든 의료진이 나를 질병을 판독해야 할 수수께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환자가 품은 고통의 까닭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한 의사의 고통을 마주하고 나도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환자의 고통을 뒷받침하는 서사'를 구체화하는 게 의료현장에서 절실하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말할 수 있을까.

회복, 한 사람의 의지와 처치로 얻는 것이 아니다
 
 책 <연결된 고통>
ⓒ 아몬드
 
책에는 그가 외노의원에서 일하며 마주한 다양한 아픈 몸들의 사례가 여섯 편의 이야기로 등장한다. 특히 두 번째 챕터 '술과 심부전' 장은 비단 이주민의 삶으로 한정 짓지 않아도 우리 삶에서 흔히 보는 가장의 고통, 즉 '생계의 책임에 따른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한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복원한다.

환자는 네팔에 노모와 여동생, 아내와 아들을 두고 온 가장으로, 고국에 연락할 때도 힘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는 성정의 소유자였다. 술을 마셨냐는 저자의 물음에 "조금 마셨다" 식의 변명조차 하지 않고 사과를 반복할 만큼.

술을 끊으면 호전될 수 있는 심장병을 앓던 환자는 저자에게 심장약을 처방받고 안간힘으로 금주했다. 금단 증세인 불안, 불면이 찾아와도 악물고 버텼다. 마침내 심장약을 줄여보자는 제안을 들은 날,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는다.

다니던 직장에서 돌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회복과 절망 사이의 기로에 섰을 것이다 이윽고 현실을 버티기 위해서라도 입에 술을 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느 직장인처럼, 술이 오늘을 버티게 하는 양식이었을 테니까.

저자는 알코올중독자로 간단히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사연을 지닌 환자가 금주 약속을 번번이 어기고 내원했을 때마다 화를 냈다고 고백한다. 검사와 처치를 계속하며 환자에게 드리워진 차별과 구조적 고통의 신음을 살피는 한편, 마주한 사람의 복잡다단한 생활 중 하나인 진료 과정을 겪으며 한 가지를 직시한다.

의료현장에서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선택이란 사실상 허구다." 환자가 회복을 결심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만병통치약처럼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 사람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제하려면 의료체계의 정립뿐 아니라 그의 삶을 이루는 다양한 장소에서의 '돌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챌 것이다. 의료현장에서 환자에게 회복수칙을 안내할 때 그의 삶을 둘러싼 맥락을 상세히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어느 겨울날, 저자는 거짓말처럼 그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만약을 대비한 상급병원 전원 의뢰서, 의사로서의 권고가 그를 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절망한다. 유독 유창했던 한국어 발음 "죄송합니다"를 이골이 날 정도로 반복해서 말했을 환자의 지난 시간. 거기엔 신체적 고통 이외에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감당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알코올중독이었든, 심장병이었든,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문제를 지녔든 그의 외롭게 무거웠을 어깨에 손을 얹은 채 힘주어 해줘야 했던 말은 이것이다. 이것들은 어찌 보면 그냥 질병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 질병에 붙어 있는 은유와 낙인까지 함께 짐을 지워 미안하다고. 또 이 모든 사태를 만든 원인 중에 당신의 책임은 단지 일부라고. 당신이 모두 짊어져야 하는 그런 짐이 아니라고 말이다."

'고통을 말하고 듣는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아픈 사람의 짐을 덜지 못한다면 최소한 보태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이주민더러 '한국 사람 일자리 빼앗는다'고 비난하는 댓글을 종종 목격한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이주민에게서 우리는 과도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 2018년부터 3년간 건강보험료 재정수지 누적 흑자 규모는 무려 1조 원이 넘는다.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국내 인력이 부족한 업종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은 평균 12만 원 가까이 되는 건강보험료를 납입한다.

2019년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외국인 건강보험 당연가입제도를 시행한다. 이에 따라 국내에 6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은 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의 기록이 담긴 책 <깻잎 투쟁기>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부분인 농업 분야에서는 거의 모든 이주노동자가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고, 따라서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 했다. 내국인은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서 보험료가 산정되지만 외국인은 내국인 보험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를 낸다".

실제로 20017년 이주민 노동자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47만 원으로 내국인의 67% 수준이다. 납부하는 보험료는 내국인의 평균 보험료(113,050원)와 같은데, 버는 돈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깻잎 투쟁기> 속 내용 인용).

문제는 지불한 보험비만큼 몸이 아픈 이주민이 병원에 가더라도 기본 통역 서비스조차 받을 수 없어 의사에게 신체의 고통을 '말할 기회'조차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후원으로 유지됐던 가리봉동 외노의원은 2017년 폐업했다. 누군가의 고통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해명되지 않은 채 신음의 방에 갇혀 있다.

아픔은 높낮이가 없다. 길 위에 선 모두에게 아픔은 방문한다. 그 방문에 앞서, 병원이 있고 누군가의 고통이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징후를 포착하는 타인(동료)의 인기척을 낼 수 있다.

하여 저자 이기병은 의사라면 환자 삶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서 오는 의학적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돌봄'을 우리 모두 전방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의료윤리학자 김준혁은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에서 "환자가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의사, 간호사, 치료사가 겸손하게 귀를 기울일 때, 전통적인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위계는 약해진다"고 말한다.

피부색은 달라도 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은 닮았으므로 어쩌면 우리는 하나의 질병코드로 모일 수 있다. 그렇다면 친절도 불친절도 필요없이, 고통 이전 우리의 시간을, 저자의 말처럼 복원하는 일이 옳다는 데 힘주어 응답해본다. 경청은 사소한 응시로 시작되어 구체적인 회복의 자리로 태어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