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동의없이 취업규칙 바꿨다가…대법 "근로자 동의 없는 변경은 무효"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을 만들 때 근로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1일 A씨 등 현대자동차 전현직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상고심에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차는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 2004년, 모든 직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과 별도로 간부사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규칙을 따로 만들었다. 월 개근자에게 1일씩 월차휴가를 주던 월차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연차휴가를 25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현대차는 당시 전체 사원이 아니라 간부사원 중 89%(5958명)의 동의를 받아 이 취업규칙을 시행했다. 그러자 A씨 등은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무효”라며 “지급받지 못한 연월차 휴가수당을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씨 등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2심인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현대차는 A씨 등 16명에게 총 1억981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간부사원들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이라며 “간부사원에게만 월차휴급휴가를 폐지하고 휴가 일수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현대차의 취업규칙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날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조차도 문제라고 판단했다. 다수 의견을 낸 7명의 대법관은 “회사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노조나 근로자들이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취업규칙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효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을 만들려면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그간의 판례는 사회통념상 취업규칙을 새롭게 만들 합리적 필요가 있으면 동의가 없어도 된다고 했다.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이다.
실제로 2001년 대법원은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가 한국정밀기기센터와 통합하면서 직원 동의 없이 취업규칙상 퇴직금 지급 규정을 바꾼 사건에서, 직원마다 퇴직금 지급률이 달라 통일할 필요가 높다는 등의 이유로 취업규칙 변경이 유효하다고 봤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정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인정되는지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렵다”며 “이로 인해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계속돼 법적 불안정성이 크다”고 밝혔다. 다만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동의없이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해도 유효하다고 인정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명백히 인정되고, 회사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노력했는데도 근로자 측이 합리적 이유 없이 반대할 경우에는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만들거나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대법관 6명(노태악·안철상·이동원·오석준·조재연·천대엽)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법의 일반원칙의 성격을 가지므로 법문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다”며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기간 그 타당성을 인정하여 적용한 것으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별개의견을 냈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내 “일본은 이미 2007년에 관련 판례법리를 노동계약법에 명문화해서 유연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며 “우리 대법원은 다수의견으로 이와 다른 경직된 판결을 내린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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