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 아들 가져간 제사, 돌려달라"…원칙 깬 두 딸의 소송
제사는 아들이 물려받는다는 원칙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11일 오후 2시 전원합의체 선고기일에서 ‘제사 주재자’를 지정할 때 남성을 우선한다고 반복해 왔던 기존의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혼외자 아들이 가져간 제사, 돌려달라” 두 딸의 소송
2017년 사망한 A씨의 부인과 두 딸은 미성년인 A씨의 혼외 아들을 상대로 ‘추모공원에 안치한 아버지 유골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원심은 혼외자인 어린 아들을 ‘제사 주재자’로 판단해 두 딸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제사 주재자’는 제사를 지내는 우리나라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민법에 오른 개념이다. 민법 1008조의3은 ‘제사 주재자가 제사용 재산(3000평 이내 선산과 600평 이내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제사용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도 면제된다. 유골과 유해도 제사용 재산으로 분류돼, 유해에 대한 처분권도 제사주재자에게 있다.
「 용어사전 > 민법 제1008조의3(분묘 등의 승계)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
[본조신설 1990. 1. 13.]
」
다만 ‘제사주재자는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정한다’는 근거규정이 없어 그동안 판례가 규범으로 작용해 왔다. 법원은 상속인인 형제자매, 혹은 친척끼리 협의를 우선하되 협의가 안될 경우 2008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제사주재자를 가려왔다. ‘적자‧서자를 막론하고 장자, 장손 등 남성’이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본 판례다.
다수의견 “여성 상속인 차별, 부계혈족 계승 퇴색"
다수의견이 판례를 변경한 가장 큰 이유는 여성차별이다. 남성 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11조,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보장하는 헌법 36조의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종전 판례에 따르면)여성 상속인은 남성 상속인의 동의 없이는 제사주재자가 될 수 없고, 피상속인에게 아들‧손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배제된다”며 “여성 상속인 차별을 정당화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현대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이나 남성중심의 가계 계승의 의미가 상당부분 퇴색했고 추모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조상 추모나 부모 부양에서 아들과 딸의 역할에 차이가 없으며, 제사도 점차 간소화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다수의견은 “장남 또는 장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 제사주재자로 두는 것이 ‘보존해야 할 전통’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며 “제사주재자를 정할 때 여성 상속인을 열위에 두는 것은 현대적 의미의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럼 제사는 누가? 직계·가까운 순·나이 순
대법원은 제사주재자 선정의 새로운 기준으로 ‘직계비속, 최근친, 연장자’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제사의 추모의식 성격을 고려하면 근친관계를 고려하는게 자연스럽고, 같은 지위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장자를 우선하는 게 전통 미풍양속에 부합한다”며 “실제 장례‧제사에서도 연장자가 상주‧제사주재자를 맡는 것이 사회 일반의 인식에 합치한다”고 설명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 망인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권한을 따질 때 연장자를 우선하는 법질서가 이미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다만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제사주재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거나, 생전 망인의 의사나 망인과의 관계를 봤을 때 혹은 남겨진 형제자매 중 다수의 뜻을 고려할 때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요건에 대해선 종전의 판례를 그대로 따랐다.
대법원은 새로운 법리가 법적 안정성을 위해 11일 선고한 이 사건과 이후 이뤄지는 제사용 재산 승계에 대한 판단부터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배우자도 포함해 요모조모 따져야” 별개의견 4명
다만 민유숙‧김선수‧노정희‧이흥구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기존 법률에서 상속상 최우선 지위를 가지는 배우자도 직계비속과 함께 유체‧유해를 물려받는 제사주재자 순위에 포함시키는 것이 오늘날 부부 중심의 가족형태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연장자 등)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누가 제사를 주재하고 유체‧유해, 분묘를 관리하는게 가장 적합할지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망인의 의사, 생전의 소통관계, 장례경위 및 협의 불성립 경위 등을 종합적이고 유연하게 봐야한다”고 밝혔다. 김선수 대법관은 이번 사건에 한해 “원고와 피고가 아버지의 유해를 나눠갖고, 각자의 방식으로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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