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비난하던 北…'디즈니 겨울왕국'으로 영어 가르친다?

장희준 2023. 5. 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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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美帝·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일관되게 고취해온 북한이 학교에서 미국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방의 사상·문화 유입을 무엇보다 경계하고 엄격히 단속하는 북한의 정책에 대비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다만 다큐멘터리 내용상 통제된 학교에서 미국 영화를 수업 보조재로 사용한 점만 놓고, 북한이 해외 문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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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 적개심 고취 이면…'디즈니'로 회화 교육
北반동사상문화배격법…외부문물 접하면 처형
이념적 위험성 덜한 어린이 콘텐츠 위주 허용

미제(美帝·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일관되게 고취해온 북한이 학교에서 미국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방의 사상·문화 유입을 무엇보다 경계하고 엄격히 단속하는 북한의 정책에 대비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11일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에 따르면 지난주 북한 조선중앙TV 방영한 다큐멘터리 내용 중 평양에 위치한 엘리트 학교 세거리초급중학교 교실에서 10대 학생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문제의 영상은 2013년 디즈니의 흥행작 '겨울왕국'으로, 북한 학생들이 한글 자막과 함께 영화를 시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사진제공=월트디즈니코리아]

당시 교실 속 칠판에는 겨울왕국에 나오는 대사로 유명한 'Do you wanna build a snowman(눈 사람 만들래)?'이 적혀 있었으며, 다큐멘터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독려로 영어 수업 방식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겨울왕국으로 영어를 가르치던 북한 여교사는 "문법 중심에서 회화 중심으로 수업을 바꾼 뒤 학생들이 수업에 더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세거리초급중학교는 북한 고위 간부의 자녀들이 다니는 엘리트 학교로 알려졌다. 다만 다큐멘터리 내용상 통제된 학교에서 미국 영화를 수업 보조재로 사용한 점만 놓고, 북한이 해외 문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검열을 거쳐 내용을 편집했거나 일부 장면만 교육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과거에도 '디즈니'를 허락한 전례가 있다. 대체로 이념적 위험성이 낮은 '어린이 콘텐츠'라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초 아동병원의 복도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그림으로 꾸민 장면이 북한 국영방송에서 포착됐으며, 2012년 모란봉악단 공연에서 '미키마우스'나 '더 푸' 캐릭터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등장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 네덜란드 '미피'를 베낀 어린이 그림책이 발간됐으며, 2016년에는 당국이 운영하는 시장 가판대에 '니모를 찾아서', '미녀와 야수' 등 DVD가 판매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평양 모란봉악단 공연에 등장한 미키마우스. /조선중앙TV
평양 시내에서 미키마우스 가방을 맨 아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러나 여전히 북한 주민들은 자의적으로 해외 영화나 방송, 음악 등을 접할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라 국가의 승인을 받지 않고 해외 미디어를 시청하면 처형당하거나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 일례로 지난해 10월에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유포한 10대 청소년 2명이 공개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북한 내에 영화·TV 시청, 머리 스타일 등 외국의 영향을 감시하는 조직 '그루빠'가 활동 중이라는 탈북자의 증언을 전하 바 있다. 그루빠는 그룹(group)의 북한식 표기로, 여기선 일종의 '단속원'을 뜻한다. 그루빠가 가장 많이 단속하는 것은 한국의 음악·TV·영화인데, 최근에는 메모리카드 보급 등으로 몰래 공유하는 것이 더 쉬워졌다고 한다.

북한 군부 출신 탈북민은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모란봉악단 공연에 미키마우스를 등장시키고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은 대담하게 받아들여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닌 김정은"이라며 "외세 유입의 1등 공신이면서, 마음대로 외부 영상을 보면 처형하겠다는 억지 공포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도 불만이 많다"고 지적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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