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아일랜드 동네 식당 아침 메뉴
장기 세계여행을 나섰습니다.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환경과 삶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기자말>
[김상희 기자]
여행을 떠난다니 다들 부럽다고 했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여행 일상이 매 순간 낭만적이고 행복하지는 않다. '나에게 한 끼 먹이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이야! 여행 삼 주째. 한 곳의 음식에 익숙해져 겁 안 내고 식당 들어갈 만하다 싶으면 '나라와 도시 옮기기'를 반복하고 있다.
먹는 문제에 비하면 관광 거리를 찾는 것은 쉽다. 서 있는 지점에서 인터넷 지도만 누르면 갈 곳을 반짝반짝 잘도 표시해 준다. '돌밥 돌밥'이라고 했던가. 낯선 나라, 언어와 음식이 다른 곳에서도 어김없이 돌아서면 밥 때다. 입에 맞는 음식을 자유자재로 골라 먹던 홈그라운드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 숙소가 있었던 더블린 핑글라스 지역 주택가 |
ⓒ 김상희 |
감기 기운을 핑계로 관광 일정을 없애고 느지막이 동네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숙소가 더블린 교외 주택 단지에 있어 식당은 편의시설이 모인 곳까지 한참 걸어가야 했다. 조용한 주택가에 사람 하나 없더니 식당에 들어서자 동네 사람들은 다 모인 듯 시끌벅적하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일요일 오전에 이런 곳에 와서 브런치도 먹고 사교도 하는 것 같았다.
▲ 동네 식당에서 받아 든 '풀 아이리시 블랙퍼스트(Full Irish Breakfast)' |
ⓒ 김상희 |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준비해 봤어'라고 말하는 듯 영양가 있는 음식은 죄다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였다. 우리나라 순대처럼 선지를 넣어 만든다는 블랙 푸딩이 신기했고 감자를 잘게 다져 모양을 잡아 튀긴 해시 브라운(Hash Browns)이 입에 맞았다. 감기 치료의 기본은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인데 감기가 반쯤 건너간 기분이다.
아침 식사의 양대 구분법인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와 컨티넨털 블랙퍼스트를 들어본 적이 있다.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는 달걀과 소시지를 곁들인 푸짐한 아침 식사를, 컨티넨털 블랙퍼스트는 프랑스 등 유럽 대륙 사람들이 빵과 커피로만 먹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먹은 식사는, 분류하자면,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에 가깝다.
아일랜드에 와서 처음 놀란 점은 버스 표지판에 두 개의 언어를 쓴다는 점이었다. 아일랜드어 게일어와 영어였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영국군의 총부리 앞에서 게일어로 대답하며 저항하는 아일랜드 청년이 떠올랐다.
▲ 게일어와 영어로 교대로 안내하는 버스 정류장 안내판 |
ⓒ 김상희 |
▲ 버스 안의 안내 문구도 영어와 게일어를 같이 쓴다. |
ⓒ 김상희 |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사람 소리로 가득 찬 동네 식당을 나서니 발걸음만큼은 현지인이다.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슈퍼마켓을 한 바퀴 돌아 컵과일 한 통을 사서 나왔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일요일 오전도 괜찮다. 숙소 가는 길에는 카페에 들러야지. 우리 동네 더블린 핑글라스(Finglas) 커피 맛은 어떨지, 우리 동네 카페에는 누가 와있을지 궁금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의 자아분열? '댓글공작 유죄' 김관진 과거 이력 보니
- TV조선 재승인 검찰 수사, 허점 투성이... 그런데 한상혁 면직?
- 요즘 소아과 가보셨어요? 난리통이 따로없습니다
- '닥터 차정숙' 크론병에 대한 오해... 여기에서 시작됐다
- 백범의 탈옥 도구 '삼릉창', 어느 대장장이 솜씨일까
- "배우 이정재씨 추천으로" 홍대 앞 판화공방에서 생긴 일
- 바이올린 배우는데 왜 날개뼈를 조이나요?
- 민주당 "쿠팡, '택배 과로사 합의' 따라야... 국토부 감독 필요"
- '여론조사 가짜뉴스' 주장한 <조선일보>가 숨긴 사실
- 이재명, 4번째 전세사기 피해자 사망에 "정부·여당 16일까지 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