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개포 아파트 석달새 2억 껑충…강남 전셋값 바닥쳤나
직장인 이민호(47)씨는 회사와 가까운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84㎡(이하 전용면적) 아파트의 전세 시세를 알아보다 깜짝 놀랐다. 호가는 물론 실거래가가 9억~10억원대로, 3개월 전보다 2억원가량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전세 물건도 별로 없었다. 이씨는 “연초만 해도 매일같이 ‘전셋값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 전세 시장 분위기가 변했다. 시세보다 싼 급전세가 소진되면서 전셋값이 반등하는 단지가 속출한다. 고금리와 입주 물량 폭탄에 급락하던 연초 시장 상황과 대비된다.
1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은 한 주 새 0.13% 올랐다. 지난달 24일 10개월 만에 반등한 뒤 3주 연속 상승세다. 지난 2월 주간 하락 폭이 1.5%에 달했던 강남구도 10개월 반 만에 상승(0.07%)했다. 서초구(-0.23%)는 연초 대비 낙폭이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오름폭은 훨씬 가파르다.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84㎡ 전세는 지난 2월 8억8500만~11억원까지 내렸다가, 지난달 10억5000만~13억원에 거래됐다. 지난 2월 8억원대까지 내렸던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84㎡도 최근 10억원에 전세 계약서를 썼다.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 2~3월 학군 수요로 급전세가 소진되면서 전세 물건이 귀해졌다”고 말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 조사 결과, 이날 기준 송파구 아파트 전세 매물은 2956건으로, 석 달 전보다 35.5% 급감했다. 같은 기간 강남구와 서초구도 각각 19.6%, 15.5% 줄었다.
전세 거래 비중도 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3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아파트 전세 거래는 3486건으로, 전·월세 거래(5889건)의 59.2%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전세 비중은 45.9%에 불과했다. 세입자를 구한 집 10가구 중 전세가 4~5가구에서 6가구로 늘어난 셈이다. 아직 신고 기한이 남은 지난달 강남 3구 전세 비중은 62.7%에 달했다.
강남권 전셋값 반등은 매매 시장에 퍼진 온기 덕분이란 분석이 많다. 통상 전셋값은 매매가격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최근 서울 매매 시장은 금리가 고점에 왔다는 인식이 퍼진 데다, 부동산 규제가 완화되면서 반등 조짐을 보인다. 특히 강남 3구가 속한 동남권 아파트값은 4주째 오름세다.
상대적으로 비싸진 월세도 한몫했다. 금리 인상 여파로 지난해 하반기 임대차 시장에선 월세 선호도가 높았다. 전세 대출 금리가 연 6~7%대로 치솟자 세입자들이 전세를 꺼렸다. 은행 이자보다 월세를 내는 게 이득이었다.
그런데 최근 시장 환경이 바뀌면서 월세 매력이 줄었다. 전셋값이 하락하고 전세 대출 금리 하단이 연 3.6%대로 떨어졌다. 이에 반해 강남 3구의 전·월세 전환율(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비율)은 지난 2월 연 4.2~4.5%로 올라왔다.
1억원을 대출받아 내는 연간 이자(360만원)가 보증금 1억원을 월세로 돌릴 때 지불하는 1년 치 월세(420만~450만원)보다 싸다는 뜻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전셋값이 내리는 동안 월세가 비싸지면서 다시 전세 수요가 늘고 있다”며 “비싸진 월세가 전셋값을 밀어 올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런 분위기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할 것으로 내다본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셋값이 바닥을 찍었다고 본다”며 “서울은 당분간 입주 물량이 많지 않고 집값이 더 내려가길 기다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전세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전세 사기 이슈로 역전세 우려가 작은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란 주장도 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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