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공동성명에 '힘에 의한' 빠진 이유…"中반발 빌미 차단"

박현주 2023. 5. 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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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중국 문제와 관련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라는 문구와 더불어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명시한 건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발맞추면서도 중국에 반발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의 대만 해협 군사훈련 관려 자료사진. AP=연합뉴스


'힘에 의한'…中에 무슨 의미?


이번 정상 간 공동성명에서 주목할 대목은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는 문구에서 '힘에 의한'이라는 수식어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는 미국이 중국의 대만에 대한 강압 행위를 비판할 때 주로 써온 말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달 19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1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공동성명에 '힘에 의한'이란 표현이 빠진 것과 관련 "대만 문제에서 '힘에 의한(by force) 현상 변경'이라고 하면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 시도를 시사하는 의미로 사실상 한정되지만, 그냥 '현상 변경'이라고만 말할 경우 대만 독립 세력에 의한 현상 변경 상황도 포함하게 된다"며 "따라서 중국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라고 하면 100% 반발하지만, 그냥 '현상 변경'이라고 하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감한 표현을 제외한 것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충분히 호응하면서도 중국이 불필요하게 반발할 빌미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현상을 변경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대만 독립 세력과 일부 국가들이지 중국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힘에 의한'이란 표현만 빠지면 한·미를 비난할 명분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한ㆍ미가 이번 공동성명에 '일방적 현상 변경'을 반대하는 지역으로 대만 해협을 적시하는 대신, 대만 해협을 포괄하는 '인도-태평양'으로 범위를 넓게 잡은 것도 중국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한 또 다른 포석이란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뒤 인사하는 모습. 강정현 기자.


공식 비방 신중해진 中


실제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ㆍ미 정상회담 이튿날인 지난달 27일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라는 문구에 반발하며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가지 말라"고 했지만, 이는 앞서 2021년, 2022년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같은 문구가 포함됐을 때보다 다소 절제한 반응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2021년 5월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가 처음 언급됐을 때는 "불장난하지 말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지난해 5월 같은 표현이 유지됐을 때 "엄중한 교섭을 제기했다(외교 경로로 항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최근 들어선 정부 차원에선 한국에 대한 극단적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대신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와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 등을 통해 반한 여론을 조장하려는 기류가 포착된다. "윤석열 정부의 극단적 친미정책으로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고 주변국 관계가 악화할 것"(글로벌타임스, 9일),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이 났다"(지난달 23일, 환구시보·글로벌타임스 공동사설) 등의 관영 매체 사설이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기류를 확인한 정부는 지난 5일 주중한국대사관을 통해 중국의 관영 매체들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수준의 저급한 표현을 동원해 언론 매체의 보도인지 의심케 할 정도"라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보낸 뒤 이례적으로 이를 공개했다. 한국이 원칙적 대응을 강화하자 중국도 정부 차원의 비방을 멈춘 채 "매체의 관점이 중국 정부 입장을 반영하지는 않지만, 중국 국내의 민의를 반영한다"(지난 8일,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며 매체 보도를 옹호하는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 데 그쳤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3국 회의까지 흔들기


다만 중국 정부 차원의 대외 메시지가 상대적으로 신중해졌지만, 올해 연말로 추진 중인 한ㆍ중ㆍ일 정상회의가 성사될 지에 대해선 우려가 여전하다. 실제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8일 "한국과 일본이 대만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한ㆍ중ㆍ일 3국 정상회의가 재개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상 한·미·일 공조를 한·중·일 정상회의와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ㆍ중ㆍ일 정상회의는 2019년 12월 중국 청두 회의를 마지막으로 코로나19 확산과 한ㆍ일 관계 경색 등 영향으로 3년 넘게 중단됐다. 그러다 지난 3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한ㆍ일 정상회담 후 "한ㆍ중ㆍ일 고위급 프로세스 조기 재가동" 의사를 밝히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한·일은 당초 이달 초 대면 실무협의→7~8월쯤 외교장관 회의→연말 정상 회의 순서로 3국 정상회의 재개를 추진했지만 중국의 태도 변화로 이런 구상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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