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소고기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곳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고아를 떠나 잠시 벵갈루루를 거쳐, 저는 더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벵갈루루에서 하룻밤 기차를 타고 도착한 도시는 케랄라 주의 코치입니다.
기차에서 내려 숙소까지 잠시 걸었습니다. 기차역 주변에는 늘 그렇듯 허름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으레 힌두교 신이나 구루의 사진이 걸려 있어야 할 가게 한 켠에, 예수님을 그린 성화가 있었습니다.
▲ 소고기가 들어간 비리야니 |
ⓒ Widerstand |
그런 만큼 서구 열강으로부터의 침입도 가장 먼저 받은 곳이었습니다. 1500년에 처음으로 포르투갈이 진출했죠. 포르투갈 출신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사망한 곳이 바로 이곳 코치입니다. 이후 코치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거쳐 영국령에 편입됩니다.
▲ 포트 코친의 거리 |
ⓒ Widerstand |
기독교 인구가 많은 것도 역사적인 영향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부활 이후 사도 토마스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동방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사도 토마스가 향한 동방은 곧 인도였고, 그는 인도 첸나이에서 순교합니다. 케랄라 지역 역시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만큼, 사도 토마스의 선교에 의해 처음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확산된 것은 페르시아와의 무역이 활발해진 4세기부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 시기에 즈음에야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죠. 그러니 케랄라 기독교의 역사는 유럽 기독교의 역사보다 깊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서구 열강의 진입 이후에도 기독교는 계속 확산되었습니다.
▲ 바스코 다 가마가 묻혔던 성 프란시스 성당 |
ⓒ Widerstand |
물론 중앙정부의 탄압이 이어졌죠. 하지만 성평등, 노동권 증진, 사회의 탈종교화,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공산당이 주장한 의제는 케랄라 사회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진보정당인 공산당과 민주/개혁파 정당인 국민의회가 번갈아 집권을 이어간 케랄라는 인도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으로 성장했죠.
특히 의료 정책과 교육 정책에서 케랄라 주는 큰 성과를 보였습니다. 평균 문해율이 70% 선인 인도에서 케랄라 주의 문해율은 90%를 넘습니다. 2011년 인도 인간 개발 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에 따르면, 케랄라 주민의 기대 수명은 74세로 인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여성의 인구가 비정상적으로 적은 인도에서, 케랄라만큼은 남성 1,000명당 여성 1,084명이라는 높은 성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코치에 걸린 공산당기 |
ⓒ Widerstand |
특히 '케랄라 모델'의 성공이 이민자의 송금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랍 지역으로 이주한 케랄라 출신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돈이 케랄라 모델의 성공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 지표의 성장 없이도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 케랄라 모델은 허상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 코치의 항구 |
ⓒ Widerstand |
저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벵갈루루에 있다가 코치로 넘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이 도시의 가난이 눈에 띄었습니다. 결국 성장이 없다면 분배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의문했습니다.
▲ 구시가에 그려진 체 게바라 |
ⓒ Widerstand |
저는 겨우 며칠을 머무는 여행자입니다. 이들을 성급히 판단할 수 없겠죠.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손쉽게 답을 내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케랄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여러 주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고, 그 실험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케랄라 모델'이라는 거대한 실험 아래에서, 우리 시대는 어떤 결과를 만나게 될까요. 또 그것이 새로운 모델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다만 케랄라에서 만난 또 다른 인도에는, 지금의 인도와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의 자아분열? '댓글공작 유죄' 김관진 과거 이력 보니
- TV조선 재승인 검찰 수사, 허점 투성이... 그런데 한상혁 면직?
- '문파'들은 안 본다는 '문재인입니다' 감독의 항변
- 요즘 소아과 가보셨어요? 난리통이 따로없습니다
- 백범의 탈옥 도구 '삼릉창', 어느 대장장이 솜씨일까
- "코로나에 이어 재건축이라는 재난이 왔다"
- 가난한 젊은이, 부유한 노인... 이 나라가 한국의 미래?
- 연일 '김남국 비판' 국힘, 국회의원 코인 전수조사는 주저?
- "사람 죽이고도 200일 인간사냥 계속" 건설노조, 경찰청장 파면 요구
- 박지원 "태영호 사퇴는 꼬리자르기, 공천 못 받으면 다 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