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 담글 때 생각나는 시어머니의 자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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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기자]
▲ 열무 김치 열무와 얼갈이로 담은 김치 |
ⓒ 이숙자 |
겨울 동안 먹어 왔던 묵은 김치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가끔이면 찌개만 해서 먹고 있을 뿐이다. 가끔 썰어 밥상에 올리는 묵은 김치는 처음엔 젓가락이 가지만 두 번만 내놓아도 언제 보았나 싶게 냉대를 하면서 모른 체한다.
봄이 오면서 밥상 차리는 일이 새 반찬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봄에만 먹던 새로운 나물 반찬에 입맛을 들일즈음 어느 사이 봄나물도 내년을 기약하고 사라지고 우리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나마 한번씩이라도 먹어 보고 싶었지만 나물들은 어느 사이 사라지고 없다. 아직 먹어보지도 않은 나물이 많은데 계절은 바뀌고 새로운 먹거리들이 시장에 나와 우리를 유혹한다.
부지런을 내지 않으면 계절에 맞는 먹거리를 그냥 보내고 만다. 내게는 다시 만나지 못할 그 모든 것들, 아쉬움이 마음안에 자리한다. 날마다 살아내야 하는 일들이 얼만큼 부지런을 내야 할까, 나이 든 내게는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그리움이 된다.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우리가 숨을 멈출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라서 밥상 차리는 주부들은 늘 고민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은, 또 저녁은, 주부들 머릿속은 늘 밥상 메뉴에 온 신경을 쓴다. 때로는 귀찮은 생각이 왜 없을까마는, 그 생각이 몰려오면 나는 깜짝 놀라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남편과 같이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밥상 차리는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인걸 왜 잊는다는 말인지. 사람은 순간 순간 잊고 사는 것이 많다.
며칠 연휴가 끝나고 동네 병원엘 갔다. 날마다 사는 일이 무엇이 그리 바쁜지, 시장 갈 시간도 없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만 파먹고 살았다.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재래시장엘 갔다. 눈에 익숙하던 나물들을 사라지고 없고, 대신 마늘쫑이 나왔고 싱싱한 열무와 얼갈이배추, 총각김치 재료들이 싱싱해서 눈길을 끈다.
마늘쫑도 며칠이면 없어지는 식재료다. 게으름을 피우면 먹지 못하고 봄을 보낼 것 같아 얼른 한다발 주머니에 담는다. 철이 바뀌면 입맛이 없어진다. 물김치와 열무 물김치를 담아 볼까 해서 가격을 물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싸다. 싱싱한 열무 한 다발이 5천 원, 무를 물어보니 한 개에 4천 원이라 한다. 얼갈이배추도 5천 원, 파 2천 원, 얼른 머리로 계산해도 이건 가성비 으뜸인 식재료다.
시장이나 마트에 갈 때마다 물가가 너무 올라 무엇을 사다가 밥상을 차릴까 고민을 했는데 열무김치와 열무 물김치를 담으면 가성비 최고인 밥상에 메뉴가 된다. 유산균이 많은 물김치는 아침 깨죽 먹을 때 먹으면 되고, 열무김치는 된장을 바글바글 끓여 들기름 넣고 보리 섞은 밥에 비벼 먹으면 밖에서 사 먹는 비빔밥 보다 훨씬 맛있다. 이건 순전히 내 입맛이다.
열무김치와 열무 물김치 담는 것은 의외로 쉽다.
2. 열무를 다듬는다. 작은 무 꼬랑지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
3. 두 번 정도 씻어 흙을 떨어내고
4. 소금물을 풀어 절인다.
5. 살짝 뒤집고 30분만 절여도 간이 다 베인다.
6. 다시 3번 정도 살살 씻는다. 너무 팍팍 씻으면 풋내가 나기 때문이다.
7. 밀가루 풀을 끓여 넣고 냉장고에 있는 각종 야채 파. 마늘, 생강. 미나리가 있으면 넣고 없으면 넣지 않아도 된다.
8. 끓여 놓은 풀에 고춧가루와 멸치젓과 새우젓을 조금 넣고 매실 진액도 빼지 않고 넣는다. 열무김치는 너무 주무르면 풋내가 나서 살살 아기 다루듯 만져 김치를 담아 놓으면 한동안 반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열무와 얼갈이 배추로 담은 물김치 입맛 없을 때 먹는 열무 물김치 |
ⓒ 이숙자 |
나이 든 세대는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다. 내가 열무 김치를 담는 이유는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또 결혼 후 시어머님이 콩밭 사이에 열무를 길러 보내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열무 김치를 담글 때는 시어머님의 애틋한 자식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내곤 한다.
이젠 내가 예전 시어머님 나이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딸들에게도 엄마의 그리운 음식이 무엇일까,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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