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가" 이 말은 사랑이다
[이명옥 기자]
"아까시야 잘 지내니? 묻는 게 웃기는 요즘이다.
그래도 먹고 살자고 희경이 밥 이야기 나왔네.
쉽고 간단한 그러면서 영양 있는" - 이유명호
5월 8일에 밥사 이유명호 선생으로부터 메모와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왕언니이자 멘토인 이유명호 선생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밥을 먹이고 읽을 책을 주시며 나의 몸과 마음의 허기와 결핍을 채워주는 분이다.
2002년 여성신문사 다닐 때 스트레스성 폭식과 우울증으로 덕수궁 길을 울면서 출근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지옥 같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무릎 통증으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몸무게를 줄이려고 다이어트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여성신문>에 실린 '살풀이'에 관한 글로 선생을 알게 됐다.
▲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집밥으로 풀어낸 삶과 사랑 양희경 에세이 |
ⓒ 달 |
선생이 보낸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달 출판사)는 배우 겸 방송인인 멀티 문화예술인 양희경의 에세이집이다.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닌 '밥'을 뼈대로 그이의 일흔생 전체를 담담하지만 감동적으로 풀어 냈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얼굴을 마주하고 그이가 지은 맛난 밥을 먹은 뒤 달달한 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작가는 아들 형제를 큰덩이, 막덩이라고 표현하는데 엄마 뱃속에서 몸과 마음의 양식을 나누어 먹고 자란 생명이 엄마 몸에서 세상을 향해 나왔으니 그보다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밥은 결국 피와 살을 나누어 280일간 생명 '덩이'를 뱃속에서 키워낸 엄마의 '사랑'같은 것이다. 작가는 365일 일을 해야하는 바쁜 삶 가운데서도 두 아들에게 꼭 집밥과 간식을 만들어 먹게 했다고 한다. '덩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집밥'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셈이다.
나도 어려서는 엄마의 밥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수많은 사회적 유전자를 나눈 사회적 정신적 가족이 나눠 준 사랑의 밥 힘으로 살아왔다. 그분들은 어김없이 밥을 먹이고 책을 먹여 쓰러지려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를 일으켜 세운 힘 "명옥아, 밥 먹고 가!"
백기완 선생 생전에는 설날 전후로 선생님께 세배를 가곤 했다. 어느 해인가 세배를 갔는데 마침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가 선생께 점심을 대접한다고 오셨다. 그만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선생께 인사를 드리고 문을 나서는데 백기완 선생님이 방문을 열고 따라 나오며 말씀하셨다.
"명옥아, 밥 먹고 가! 때 됐는데 왜 그냥 갈라고 그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는 것은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 말에는 '너 무슨 일이 있니, 어떻게 살았어, 별 일 없는 거지. 밥 먹고 힘내' 그 모든 마음이 다 담긴 응원, 격려, 공감의 시간을 함께 한다는 의미다.
내가 가장 신경쓰고 사는 건 먹는 거다.
너무 기승전 '밥' 인가 싶지만
밥 잘먹고 이타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심신이 건강하다.
- 본문에서
열여섯 소녀 나이에 일찍 엄마의 역할을 하며 부엌 일을 책임지던 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부엌 놀이(그녀는 부엌 살림을 부엌 놀이라고 부른다)를 가장 중요한 일이자 최대의 관심사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밥은 결국 '사랑'이자 삶을 이어주는 생명의 끈이다.
심리기획자 이명수는 추천글에서 연기, 내래이션, 엄마 양희경이 꼽는 자신에 대한 키워드에 '집밥 경험철학자'라는 단어를 추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집밥을 먹으면 삶이 단단해 지고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고 창의력, 성취감, 도전 정신이 생긴다는 작가에게 '집밥 경험철학자'라는 표현은 참 적절하지 않은가.
늘 마음 다독이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나에게 맛난 거 만들어 주는 것.
어른이 된 순간부터는 이게 제일 중요하고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해줘야 하는 일이겠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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