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Z여자들] 매일 먹어도 좋아, 여름엔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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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편집자말>
[한재아 기자]
새하얀 눈꽃이 피는 겨울과 푸른 잎이 돋아나는 봄이 지났다. 어느새 거리에는 따뜻한 햇볕이 내려앉았고, 나무 밑에 진 그늘이 시원해졌다. 딸랑-, 커다란 거실 창문에 달아놓은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잔잔한 바람에 흔들린다.
나에게 여름은 애증의 계절이다. 내가 태어난 계절이자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 유독 더위에 약한 나는 여름이 오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내리쬐는 햇빛이 만드는 더운 공기가 싫었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온갖 벌레들과 가만히 있어도 흘러내리는 땀, 기분 나쁜 끈적한 느낌이 싫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솟구치는 불쾌 지수도, 누군가와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올라와 예민해지는 나도 싫었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점이 없는 이 계절에 '애증'이라는 감정을 붙여준 이유는 딱 하나, 시원하고 차가운 디저트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4월의 초입에 접어들면 여러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빙수, 파르페 같은 차갑고 달콤한 디저트들을 시즌 메뉴판에 올려놓기 시작한다. 맛과 비주얼의 질이 올라갈수록 가격은 사악해지지만, 어쩌다 한 번씩은 사 먹을 만한 그런 간식들(가끔은 돈에 비해 맛도 비주얼도 별로인 메뉴들도 있지만)이다.
나는 그중에서 빙수를 가장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과 머리가 띵-해지는 차가움을 느낄 수 있는 얼음 빙수를 좋아했는데,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우유 얼음을 처음 먹어본 뒤로는 우유 빙수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되었다.
▲ 망고 우유 빙수. 언제 먹어도 맛있다. |
ⓒ 한재아 |
동그랗게 파내진 수박이 수북이 쌓인 자리에 시원한 사이다나 밀키스를 붓고, 과일 통조림을 넣은 후 추가로 각얼음까지 띄워주면 시원하고 맛있는 여름철 K-디저트가 완성된다. 만들어진 화채를 투명한 컵에 나눠 담아 한 모금 마시면 과일 향이 섞인 탄산음료의 청량감이 기분 나쁜 끈적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고, 작은 티 포크로 건져 먹는 과일의 상큼함이 올라가는 불쾌 지수를 가라앉게 했다.
시원한 화채를 먹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누우면 커다란 거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에 서서히 눈이 감겼다. 에어컨 바람에 서늘함을 느끼며 가족들과 함께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푹푹 찌는 여름의 더위도 잊어버리고는 했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써 시간을 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함께 보다는 각자가 더 편해졌고, 서로의 시간을 맞추는 일이 피곤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도 가족보다는 친구를 먼저 부르는 것도 있고.
이건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무언가를 함께 하기로 약속한 후 '나 그때 바빠', '어차피 매일 보는 얼굴이니까', '나중에 하지 뭐'와 같은 이유로 하루하루 미뤄지는 약속들이 점점 늘어났다. 아마 지금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잊힌 약속들도 꽤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혼자 보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굳이 가족과 함께 보낼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 친구와 집을 나와 자취를 하는 친구 역시도 가족보다는 혼자, 혹은 친구와 함께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라는 유명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익숙함에 잠식된 지 오래인 지금은 소중함 같은 건 잊어버리고도 남은 듯하다. 어렸을 때 함께 먹었던 화채 덕분에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가족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만들어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이 뚜렷해진다.
사실은 그때 먹었던 음식보다 함께 했던 가족들과의 시간이 더 그리워지는 것일지도. 이번 여름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또 얼굴만 보고 지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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