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직업은 변호사, 이 남자의 '60점 인생'

허형식 2023. 5. 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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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태민 지음 <인생 커트라인은 60점이면 충분하다>

[허형식 기자]

"변호사는 저의 열 번째 직업입니다. 그리고 저는 N잡러입니다."

가까운 지인 중 50의 나이에 24번이나 이직한 사람이 있어서 웬만해선 아무 감흥이 없는데도, 위 문장은 내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제목은 <인생 커트라인은 60점이면 충분하다>라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어른 버전인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잠시, 책을 펼치는 순간 늦은 나이에도 성장 드라마를 쓰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피곤한 20대를 지나서 
  
 <인생 커트라인은 60점이면 충분하다> 표지
ⓒ 멜라이트
한국에서 유일하게 식품을 전공하고 식품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민은 부산에 있는 로스쿨에 입학할 당시 그의 나이 서른 일곱이었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은 했지만, 그 당시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점수에 맞춰서 고른 전공이었기에 적응이 만만치 않았다. 2점대 학점으로 대학 5년을 겨우 다니다가 결국 중퇴, 다시 상명대에 입학하지만 그마저도 한 학기 만에 관두고 군에 입대한다. 전역 후 28세에 수도권 대학에 다시 입학해서 31세에 졸업했으니, 참 피곤한 20대를 보냈다.

30대라고 달랐을까. 학원 강사, 중소기업 해외 영업, 외국인 투자유치 업무 계약직 공무원,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 등 이직과 전직으로 채워진 그의 갈지자 행보는 계속 이어진다. 도대체 어쩌려고 이렇게까지 무모할까 싶은데, 그런 생각에 결정타를 날린 게 바로 37살에 내린 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정이었다. 이전의 아홉 번의 이직과는 완전히 다른, 판이 완전히 달라지는 선택 아닌가.

반전은 열 번째 직업인 변호사가 되면서 일어난다. 부모에게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소리 딱 듣기 좋았던 김태민 변호사의 잦은 실패와 방황이 오히려 그의 차별화 포인트가 된 것이다. 그가 잠시 거쳐 갔던 식약처 경력이 그에게 '식약처 공무원 출신의 식품전문변호사'라는 포지셔닝을 가능하게 한 것.
 
인생은 초단위로 가치가 변하는 암호화폐나 상장 주식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절대로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도 없고, 평가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무 일찍 실망할 필요도 없다. 최소한 5년, 10년이 지나야 그때 내가 했던 행동이나 당시 상황이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내 인생이 완성된다.
- 32p

이 책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김태민이 변호사가 된 이후에 시작된다. 열 번째 직업으로 변호사가 되는 것?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역시 '사'자 붙은 직업이 최고야'라고 느껴 변호사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김태민은 자문회사만 30개가 넘고 적지 않은 금액의 상담료와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변리사, 세무사, 영양사, 한식조리사 등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보험설계사, 민간자격증 교육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은 재무설계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고, 라이브홈쇼핑 상품안내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며 자꾸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이유는 뭘까?

전제조건 : 지나치게 전력을 기울이지 말 것

이쯤 되면 이 사람 성격이 원래 대범하고 도전적인가 싶지만, 김태민은 '소심한 성격과 낮은 자존감으로 비롯된 우울함과 불안함'이 항상 곁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작은 성과가 자신감을 주고, 그 자신감을 쌓아가면서 발전하면 과정도 즐겁고 성공에 이르기 쉽다는 것을 체득했단다.

<인생 커트라인은 60점이면 충분하다>는 제목의 비밀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는 당장은 쓸모가 없을지 몰라도 본인을 설레게 하는 게 있다면 주저 없이 도전했다. 물론 전제조건은 있었다. 지나치게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 시험이 있다면 커트라인이 60점만 넘어도 합격할 수 있을 것.
 
나는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100점이 아닌 60점을 커트라인으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41p

2022년 OECD가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골든 티켓 신드롬'을 경고했다. 명문대 진학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낮은 확률의 '골든 티켓'에 전부를 거는 현상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김태민도 20대에는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혔지만, 알량한 학벌이나 졸업장, 남에게 건네는 명함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만이 진정한 나로 사는 방법이라고 깨달았단다.
온 국민의 눈높이가 오랫동안 높아 있던 터라 당장 커트라인을 60점으로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방법이 있다. 김태민을 따라하면 된다. <인생 커트라인은 60점이면 충분하다>는 에세이지만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그냥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작가가 실패를 자양분 삼아 쓴 책이니 훌륭한 참고서다.
 
하는 일마다 족족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나는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배움에 도전하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다른 것을 포기할 때 가능하다. 내가 싫어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포기하고 피하면 의외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얻을 수 있다. 그 시간에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주어진 시간과 경제적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112P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다. 100점 말고 60점만 맞아도 행복한 인생, 당장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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