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 반, 타의 반' 삼성 빅딜 당분간 보기 어렵나
'기술 자국주의'로 깐깐해진 M&A 시장…대규모 적자도 부담
'뉴삼성' 감안한 AI, 컴퓨팅, 로봇 등 추가 투자 기대도
올해는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M&A)이 성사될 수 있을까. M&A 계획을 공식화한 지 2년이 넘어가도록 "현재진행중"이라는 입장에서 달라지지 않고 있어, 재계 안팎으로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업계는 글로벌 경제 안보 기조가 강화되면서 M&A 기류가 바뀐데다, 삼성전자 주력 사업인 반도체가 크게 휘청이고 있어 인수·합병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진단한다. 본업 정상화가 시급해진 만큼 '메가딜' 결정도 당분간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제 2 반도체·바이오가 될 만한 신사업 발굴 니즈는 충분하지만, '기술 자국주의' 등 글로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M&A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기술 독점 우려를 근거로 규제 당국들은 기업간 합종연횡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기업간 '빅딜'은 수 년째 성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 그래픽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암)을 인수하려고 했으나 미국·영국 등 주요국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당시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양사의 심각한 독과점 우려를 표명했었다.
낸드플래시 반도체 세계 2위 업체 일본 키옥시아(구 도시바메모리)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간 합병 시도 역시 진행중이나, 규제 당국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규제 당국은 반도체 뿐 아니라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배터리, 바이오,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첨단 산업에 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삼성이 M&A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진이 예상 보다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간 한국 경제를 탄탄하게 뒷받침해왔던 반도체는 지난해 말부터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삼성의 발목을 제대로 잡고 있다.
DS(반도체) 사업은 1분기에만 4조5800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분기에도 3조5000억원 수준의 영업손실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의존도가 적지 않은 삼성으로서는 적자 주 요인인 메모리 사업을 정상화하는 동시에 반도체 판도를 좌우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 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게 어느 때 보다 중요해졌다.
이에 삼성은 메모리 수급 개선을 위해 범용(레거시) 제품을 중심으로 감산을 실시하는 대신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는 지속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회사측은 "단기 생산 계획은 하향 조정하나 필수 클린룸 등 인프라 투자를 지속하고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R&D 투자 비중을 확대해 중장기 수요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예년과 달리 삼성전자의 지갑 사정이 얇아진 점이 문제다. 삼성전자는 최근 3년간 영업이익 수준에 준하는 반도체 시설 투자를 단행해왔다.
과거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는 2020년 32조9000억원, 2021년 43조6000억원, 2022년 47조9000억원이며 이 기간 연간 영업이익(연결 기준)이 35조9939억원, 51조6339억원, 43조3766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벌어들인만큼 투자에 쏟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반도체 부문 적자만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자 삼성전자는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렸다. 110조원이 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자체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 미국, 중국 등 해외법인에 쏠려 있어 단기 조달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회사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반도체에 '올인'하겠다는 것은 다른 투자까지는 여력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내외에서 진행중인 설비 투자 금액이 달러 강세, 건축자재가 상승으로 계속해서 불어나는 것도 부담요소다. 테일러 공장만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기조가 지속되는 한 10조원을 웃돌 수 있다.
다국적 기업간 M&A에 '경제 안보' 논리가 작용하는 환경 하에 사업 효율화가 시급한 삼성으로서는 대대적인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빅딜' 대신 당분간 반도체 정상화 및 차세대 기술 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빡빡하기는 해도, 시장 잠재력 및 사업간 시너지가 확실시 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접근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앞서 삼성은 앞으로 5년간 반도체·바이오·신성장 정보기술(IT)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만큼 신시장으로 주목 받는 로봇, 차량용 반도체, 전장 등에서 지분 투자 등 다양한 방법을 추가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첨단 기술 확보 경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확전되면서 M&A 시장도 달라진 상황"이라며 "시황 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시스템 반도체를 비롯해 사업 시너지 측면에서 유리한 신사업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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