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아과 가보셨어요? 난리통이 따로없습니다

최지혜 2023. 5. 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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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줄서고 대리접수 알바까지... 오전에 이미 '진료 마감' 하는 병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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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기자]

온갖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봄이다. 새 학기를 기점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소아과를 찾고 있다. 지난번 감기가 지나간 지 채 일주일도 안돼 아이가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일명 눈곱 감기라 불리는 아데노바이러스다. 이 감기는 어찌나 센지 아이에게 옮은 나도 2주 넘게 항생제를 먹었다. 엄마들 사이에선 이미 코로나보다 독한 걸로 명성이 높았다.

성인이 된 후 열감기로 이렇게 아파보긴 처음이었다. 첫날엔 밤새 해열제를 교차복용하면서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서둘러 이비인후과 갔으나 이미 병원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코로나 검사와 독감 검사까지 마치고 수액처방을 받기까지 꼬박 2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의사 말로는 온몸에 염증이 퍼져 쇼크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소견서를 써줄 테니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

아침마다 병원 예약 전쟁
 
 최근 감기환자가 급증해 소아과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하니 당장 와도 진료를 봐줄 수 없다고 했다. 응급실도 이미 만석이었다. 해열제와 항생제를 먹으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니 괜찮지만, 만약 아이가 이런 상황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실제로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의 아이도 아데노바이러스에 걸렸는데 입원을 못해 애를 먹었다. 열이 40도를 웃도는 중에도 집에서 하루를 기다렸다가 겨우 자리가 나 입원할 수 있었다.

병원이 없어서 그런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사는 세종시는 아이들이 많은 도시답게(?) 소아과가 많은 편이다(관련기사 : 출산율1위 도시에 살지만 둘째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동네만 해도 도보 15분 거리에 소아과가 4개나 있다. 이비인후과와 가정의학과까지 합치면 6개 병원이 코앞이다. 그러나 이번 봄은 유난히 아침마다 예약 전쟁이다. 소아과마다 아이들이 꽉 차니 주변 이비인후과와 가정의학과까지 아이들이 몰린다.

동네에서 인기 있는 소아과는 오픈시간에 맞춰 병원 예약 어플을 켜도 잠깐 멈칫하는 사이 마감되기 일쑤다. 겨우 혹은 운 좋게 예약을 하고 병원을 방문하면 이미 오전에 '오늘 진료 예약 마감'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아무리 마스크를 벗으면서 온갖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그렇다고는 하나... 이쯤 되면 소아과가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는 사실 지난겨울부터 계속해서 감기약을 먹고 있다. 1~2주 약을 먹고 나아서 어린이집에 보내면 다른 바이러스를 달고 오기를 반복했다. 3월부터는 두 달 동안 어린 집에 등원한 날이 채 보름이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차라리 한동안 집에서 데리고 있을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가정보육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퇴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린이집 역시 몇 달을 대기해서 겨우 예비 번호를 받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시 내가 원할 때 입소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아픈 아이를 보고 있는 것도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약을 계속 먹는 것도 큰 문제다. 매번 항생제가 포함된 약을 먹이다 보니 내성문제부터 간에 부담이 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진료를 받아도 불안한 마음
 
 오진을 해도, 약을 잘못 처방해도, 그저 받아주는 소아과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가야 한다.
ⓒ 최은경
 
의사에게 물어보면 될 텐데 그도 여의치가 않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도떼기 시장 같은 소아과에서 의사에게 자세한 설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다녔던 단골 소아과도 마찬가지다. 뒤로 대기 환자가 줄줄이니 진료시간은 채 1분을 넘기지 않는다.

가끔은 의사가 처방전을 잘못 주거나(3일 처방에 항생제만 이틀치 준다던지, 물약 없이 가루약만 준다던지 하는) 3일 만에 재진으로 방문했는데,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물어볼 때면 과연 진료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건지 불안하다.

그렇다고 의사를 탓할 수만도 없다. 수액 맞기 싫다고 악을 쓰며 발길질하는 아이부터, 바닥에 뒹구는 아이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진료하는 선생님을 보고 있자면, 어쩔 땐 아파서 온 게 되려 미안해질 정도다.

그렇다 보니 바쁜 의사보다 선배 엄마이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게 된다. 맘카페에 유독 아이의 증상을 알리면서 도움을 구하는 글이 많은 것도 나와 같은 상황 때문일 테다.

하루라도 빨리 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잘한다고 소문난 의사 선생님들을 찾아보지만, 지역에서 유명한 소아과에 갈 엄두는 내지도 못한다. 맘카페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 소아과에서 새벽 5시부터 줄 섰다는 간증글이 줄줄이 올라온다. 이렇다 보니 대리 접수는 기본이고, 대신 줄서서 접수해 주는 알바까지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엄마들의 맘이 흉흉하다.

선택권이 없다. 오진을 해도, 약을 잘못 처방해도, 그저 받아주는 소아과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가야 한다. 응급한 상황이면 더 할 것이다.

한숨이 나오는 현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소아진료 등 필수의료 정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얼마 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폐과 선언을 했다. 저출산과 낮은 수가, 지속적인 수입감소로 아이들을 돌보는 (개인) 병원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서 소아과 전문 진료를 포기하는 개원의 회원을 대상으로 내과, 피부, 미용, 통증클리닉 등 일반 진료 전환 재교육을 지원한다고 했다.

한숨이 나왔다. 의사들 때문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소아과 대란이 쉬이 해결되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폐과 선언 이후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의료현장과 소통하면서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대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동네 병·의원에서 전문의 전공이 아닌 다른 과목 진료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소아과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은 언제쯤 나올까. 고열인 아이를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4군데를 돌아 겨우 입원했다는 맘카페 글을 읽으며 초보 부모는 오늘도 마음이 무겁다. 답답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이와 내 마스크를 고쳐 쓰는 것 밖에 없는 걸 어찌하랴. 각자도생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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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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