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파'들은 안 본다는 '문재인입니다' 감독의 항변
[이선필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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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영화로 특기할 점은 정치인 문재인의 공과를 논하기보다는 퇴임 직후 약 두 달 시간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2017년 <노무현입니다> 이후 6년 만에 관객과 만나는 이창재 감독은 공교롭게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의 삶을 담아낸 최초의 감독으로 남게 됐다. 그만큼 부담도 컸을 터.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감독을 만났다. 전주국제영화제 공개 전후로 더욱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해당 작품을 두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랜 기획, 대통령의 진심
탄핵정국을 거치고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70% 이상의 지지율을 받으며 장밋빛 미래를 예고한 것처럼 보였다. 이창재 감독 또한 그 무렵 문재인 다큐를 떠올렸고, 주제 또한 명료했다. "K 드라마, K 영화 등 온갖 K 시리즈 용어들이 나오기 시작하던 때인데 문재인 당선 또한 제대로 된 한국의 정치사회 제도를 상징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며 그는 "이명박, 박근혜 때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서구 사회에서 마치 자신들의 제도가 선진적이라 생각하는 의식에 나름 자극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통해 몇 번의 기획서를 냈지만, 묵묵부답이었고 네 차례의 수정을 거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인공이 된 버전, 그 주변 참모와 국민의 관점으로 바라본 한국 등 몇 가지 제안을 하는 사이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BBC에선 8년간 백악관에 상주하다시피 해서 오바마 다큐를 만들었는데, 대통령께선 청와대를 사적 용도로 촬영하는 게 맞냐는 입장이라고 전해들었다"며 이창재 감독은 기획 초기를 회상했다.
"<대통령과 나>라는 제목이었던 때도 있었다. 내심 청와대에서 이 다큐를 방어해주길 원했는데 안 된 거지. 이 영화를 투자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기한 내에 만들어졌으면 했다. 작업 자체가 길어지는 건 사실 괜찮은데 진행이 될 것 같다가도 안 되는 게 반복되는 상황이 힘들었다. 제 경력 통틀어 가장 한숨을 많이 쉰 작업이 아닌가 싶다."
그 사이 대통령 퇴임이 다가왔고, 정권은 바뀌었다. 자연인이 되고 싶어 고향인 경남 양산 평산마을로 내려갔지만, 반대 집단이 사저 주변을 둘러싸고 혐오 시위를 벌였다. 비서팀을 통해 수차례 편지를 보내곤 했던 이창재 감독은 어느 날 "한번 보시죠"라는 문 전 대통령의 회신에 양산으로 향했다고 한다.
"(영화 촬영이) 좋다 나쁘다 이야기도 안 하시고, 하자 하지 말자의 이야기도 안 하셨다. '아 그렇군요'라며 계속 들으시기에 승낙의 뜻인지도 몰랐다. 한 달 뒤 촬영팀과 가도 되겠습니까 물었는데 '와 보시죠'라는 답변을 비서팀에게 전달받았다. 고향에 왔지만 갇힌 느낌이 든다고 하시더라. 주변 상황도 시선도 그랬다. 그런 분을 자연인으로만 다룬다는 건 맥락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이제 막 벗어 던진 현재와 1년 전 모습의 간극을 담게됐다.
두 차례에 걸쳐 문재인 전 대통령을 약 10시간 이상 인터뷰했다. 가장 깊게, 장시간 인터뷰한 것 같다고 당신께서 말씀하시더라. 다행인 건 제 질문의 방향이나 한도를 규정하기 않고, 답변을 피하시지도 않았다. 핵폭탄급 논란에 대해서도 다 말씀하셨지만, 영화의 목적과 맞지 않아서 편집했다. 돌려서 이야기 안 하시는 분이었다. 다만 이 영화는 정치를 모르는 분들이 보더라고 편히 볼 수 있었으면 했다. 논란 자체를 가리는 게 아니라 그런 사안이 생겼을 때 그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다루려고 했다."
일각에서 소위 '문파'로 통칭되는 문재인 강성 지지층에서 불거진 비판, 즉 문재인의 업적이나 참모진 관련 더욱 분명한 메시지가 담겼어야 한다며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과 관련, 감독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조국 전 장관, 김경수 전 지사에 대해 속시원한 답변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아쉬울 수 있다는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감독은 "정치가 아닌 한 사람의 태도를 담는 영화기에 (그런 부분은) 다루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 영화 <문재인입니다>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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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적 이슈를 아주 배제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엔 미국과 협상하며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무제한으로 풀어버린 것, 일본의 반도체 원자재 수출 규제에 강경하게 대응한 일 등 주로 국방과 외교적 성과를 언급한다. 공교롭게 현 윤석열 정부가 비판받는 굴욕 외교와 대조를 이루는 모양새다. 이창재 감독은 "의도한 건 아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영화 편집이 올 2월 초에 끝났는데 그땐 이런 외교 이슈가 불거지기 전이었다. 우회적으로 이 정권을 공격하는 것에 관심 없었다. 저 스스로도 정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고, 상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정도다. 다른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검찰 개혁 문제를 부각했을 수도 있겠지. 노무현, 문재인을 관통하는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전 5년, 10년 뒤에도 공감받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노무현입니다>에서도 (그의) 서거 이야기는 5분 정도만 할애하지 않았나. 현 시국을 잘 알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했다.
"그래서 사안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 압박에 대통령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자연과 동물에게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말이다. 정치 영화였다면 공과를 다루는 게 맞고 반대진영 의견도 듣는 게 맞겠지만, 한 사람의 태도는 주변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거잖나. 그래서 주변 참모, 그 중에서도 가까이서 혹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분을 관찰한 참모들 이야길 주로 담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창재 감독은 정은경 전 질병청장을 언급했다. "재직 중에 개별 인터뷰를 어느 곳과도 안 하신 분인데 분당 서울대병원 연구위원으로 들어가기 전날 유일하게 인터뷰에 응하셨다"며 이 감독은 "아직 영화를 보시지 못했을텐데 가장 반응이 궁금한 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분이 가정의학 전문의를 딴 뒤 좀 더 사회에 이바지할 걸 고민하시다가 예방의학을 공부하신 분이다. 본래 받던 연봉의 3분의 1을 받으면서 새로 취업하신 셈이지. 퇴임 후 경력을 기반으로 더 좋은 곳에 갈 수도 있는데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감염병정책연구위원으로 가셨다. 본인의 지식과 행정 경험을 나누려는 것이지. 이렇게 공인의 삶을 사는 분이 있구나 싶었다. 이런 분을 발탁한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정 청장도 궁금해하더라. 왜 그때 자길 택했는지 물어봐달라고도 하셨다.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한 분은 이런 말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게 개인 상담도 했다고. 그만큼 이야기가 잘 된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미국에선 정상회담 전 상대의 행동 심리나 표정 등을 분석해서 진실지수를 뽑아 전략을 짠다더라. 상대 진실 지수가 낮으면 그에 맞게 대처하는 건데 문 대통령은 아주 높은 점수가 나왔다고. 그래서 트럼프가 마음 놓고 전화 통화를 했다더라."
휴먼 다큐멘터리 치고는 인물 관찰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할 수 있겠지만 이창재 감독은 "더할 것도 덜 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 담지 못한 풋티지 영상들을 예로 들며 그는 "정말 용비어천가처럼 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이 영화의 취지가 무너진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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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뿌리에서 나와서 다르게 꽃이 핀 분들 같다. 세상을 향한 연민이 큰 뿌리라고 생각한다. 두 분 다 거기에서 시작해서 다른 열매를 보여주셨다. 노통은 자체발광하신 분이다. 선명한 메시지가 있고 설득력도 뛰어났다. 근데 좀 이른 시기에 나와 시대와 보조를 맞추기 어려웠던 분이셨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문통은 자체발광보단 배경이 되시려던 분이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려는 태도를 취해오셨던 것 같다. 제가 이 영화를 오래 붙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촬영 때도 일부러 배경을 환하게 하고 문통을 어둡게 담기도 했다. 본인 자체가 빛이 없는 분이 아닌데 조금 뒤로 물러나 상대를 대하려는 태도가 있으시더라.
계속 반복하신 말씀이 잊힌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건 전임 대통령으로서 잊히겠다는 뜻일 텐데 엄연히 임기가 끝났고 자연인으로 제2의, 제3의 삶을 사시려는 분을 왜 사람들은 인정 못 해줄까, 한 사람의 시민으로 발언하는 걸 왜 정치적으로만 해석할까, 제가 다 안타깝다. 반대편에 계신 분들도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고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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