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나랑 BTS랑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 거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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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호 기자]
"꺄!" 하는 단말마의 비명이 야밤의 고요함을 찢었다. 안방 침대에 누워 이제 막 꿈나라 급행열차에 탑승하려 했던 나는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몽둥이(실은 청소기)를 들고 거실로 뛰쳐나갔다.
"여보! 나 슈가 콘서트 당첨되었어! 이거 정말 어려운 건데. 나 너무 좋아! 꺄!"
▲ 슈가 단독 콘서트 예매 성공 아내는 BTS 멤버 슈가의 단독 콘서트 예매에 성공했다. |
ⓒ 신재호 |
"난 또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네. 그렇게 좋아?"
"그럼, 이거 팬카페에서 추첨으로 당첨된 거야. 얼마나 경쟁률이 높았는데. 나 이제 슈가 오빠 직관하러 간다!"
'오빠?' 동생 아니 조카뻘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하지만 한껏 차오른 아내의 기분을 꺾고 싶지 않았고 더 나아가 그러다 본전도 찾지 못할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조용히 청소기를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눈을 감고 아내의 "꺄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몹시 피곤해보았다. 아마도 전날의 흥분 때문에 쉬 잠을 청하지 못함이 분명했다. 그 시간에 BTS 영상을 보며 날 밤을 새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불쑥 아내의 생일이 곧 다가옴을 인지했다.
"여보, 그럼 내가 입장권 비용 내줄게. 생일 선물로."
"됐어. 지난번에 우리 서로 선물 안 하기로 했잖아."
"아냐.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정말? 나중에 후회 없기다. 내가 결제하고 카톡으로 금액 보낼게."
그래. 이참에 통 큰 남편 한번 되어보자고. 얼마나 하겠어. 출근해서 업무를 보던 중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화들짝. 그 안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두 배나 많은 숫자가 적혀있었다. 이 정도면 한 달 용돈의 절반 가까운 비용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무를 수도 없고 까짓것 당분간 구내식당 이용하고 사 먹는 커피도 사무실 믹스로 대체하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아내 계좌로 피 같은 돈을 송금하고 카톡으로 알렸다. 아내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보지 못했던 빨간 하트 이모티콘까지 보냈다. 그것도 두 개나. 난 또 그게 뭐라고 설레는지 원. 그래도 일단 점수는 많이 땄으니 스스로 칭찬을 해주었다.
▲ BTS 콘서트 아내는 BTS 공연 볼 생각으로 그 어느 때 보다 설레는 중이다 |
ⓒ 신재호 |
"여보 나왔어."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오른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골반까지 돌리며 흥에 취했다.
"여보 나왔다고. 안 보여?"
"아…. 왔어. 몰랐네."
그제야 귀에 꽃은 이어폰을 뺐다. 식사하며 물어보니 BTS 음악을 듣고 있었단다. 뭐 그럴 수 있지.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겼는데, 그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혼이라도 나간 듯 수시로 중얼거리고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는데 알고 보니 BTS의 지난 동영상을 모두 몰아보기 시작했다.
아내가 BTS에 빠져들수록 점점 내 안의 서운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그래 물론 머릿속으로 이해는 되었다. 남자인 내가 보아도 잘생긴 외모에 춤과 노래까지 뭐 하나 빠질 수 없는 우주 최강 그룹이자 대한민국의 보물인 그들과 배불뚝이 늙은 중년인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같을 수 있냔 말이다. 알면서도 이해가 잘 안되고 그런 아내가 밉고 그랬다. 결국 좁디좁은 내 마음은 참지 못하고 서운함을 표출했다. 어디 그뿐인가. 치졸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당신 나랑 BTS랑 물에 빠지면 누구 구할 거야? 응?"
"지금 제정신이야. 그걸 질문이라고 해. 애도 아니고 참."
끝끝내 아내는 답을 하지 않았다. 왠지 아내 입에서 나올 말이 어떨지 두려워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근데 내가 왜 이러지. 이 나이에다 질투라니. 해석되지 않은 감정들로 머릿속까지 복잡했다.
지인 중에 BTS 아미가 있었다. 단순한 팬을 넘어 그들 공연을 보러 뉴욕까지 다녀오고, 표 구매 성공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분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날 기회가 있었고 자연스레 고민 상담을 했다.
"지금 아내는 초기 몰입 증상이네요. 저도 그랬어요. 예전 동영상까지 다 보는데, 몇 달이 걸렸거든요. 아마 시간이 좀 더 걸릴 거에요. 근데 제 남편도 처음엔 질투도 심해지고 그걸로 서운해도 많이 했는데. 나중엔 제가 기분도 좋아지고 삶의 활력을 느끼는 것을 보고는 지금은 뭐라 안 해요. 오히려 지지를 해준다랄까.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아내의 긍정적 변화를 잘 살펴보세요."
▲ 대학 시절 교내 밴드부 키보드 주자였던 아내 아내는 대학 시절 교내 밴드부의 키보드 주자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
ⓒ 신재호 |
사실, 아내는 대학 때 교내 밴드부에서 키보드 주자로도 오랫동안 활동했었다. 연애 때 공연하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며 그 행복을 자주 전하곤 했다. 여러 곳에 관심도 많아서 상담을 전공했음에도 특수 분장사를 꿈꾸며 유학까지도 고려했었다. 그때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지금도 가끔 말하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무튼 그랬던 아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에 아이들 교육까지 챙기며 그 빛을 점점 잃어갔다. 그걸 알면서도 나 사는 것이 바쁘다며 간과했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아내 손이 덜 가면서 시간적 여유도 있어 무엇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다. 운동이라도 하라고 등 떠밀어도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굴엔 늘 피곤이 가득했고, 집에 오면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다.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에 공허함이 가득했다.
취미가 생긴 아내를 무한 응원하기로 했다
이제 아내는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여보 근데 당신 얼굴, 예전 20대 때 같아. 빛이 난다. 빛이 나. 공연 덕에 회춘했나 봐."
"그래? 하긴 요즘 얼굴 좋아졌다는 말 자주 듣긴 해."
"내가 BTS에 상이라도 주어야겠다. 덕분에 피부과 비용도 절감하고 헤헤."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디 상이라도 있으면 정말 주고 싶었다. 아내가 저리 힘이 나고 밝은 모습을 보니 예전 젊을 때가 떠올랐다. 나도 못 한 걸 그들이 해냈다. 그래 결심했다. 못난 마음은 저리 치워 버리고 무한 응원을 하기로.
▲ 정국의 포토 퍼즐 아내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선물한 정국의 포토 퍼즐 |
ⓒ 신재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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