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생 트리오' 동반 은퇴, 프로농구 황금세대의 아름다운 퇴장
[이준목 기자]
2007년과 2008년 프로농구(KBL) 신인 드래프트는 한국농구사에 '황금세대'를 배출한 드래프트로 꼽힌다. 2년에 걸쳐 훗날 프로농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걸출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라인업을 보면 김태술, 이동준, 양희종, 신명호, 이광재, 김영환, 정영삼, 함지훈(이상 2007년), 하승진, 김민수, 윤호영, 강병현(이상 2008년) 등 농구팬들이라면 모두 익숙할 '빅네임'급 선수들이 이 무렵에 대거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이 프로농구 올스타에 국가대표를 지냈고 한 팀의 프랜차이즈급 선수로 성장했다. 우승과 MVP를 차지하고 영구결번이 된 선수도 있다.
심지어 우승연, 송창무, 천대현, 김봉수, 박구영, 양우섭 등 이 시기 1라운드 하위권이나 2라운드에 발탁된 선수들도 만일 다른 시즌 신인드래프트 같았다면 상위권에 발탁되었을 만한 실력자들이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선수들은 프로농구 출범 초창기를 이끈 농구대잔치 세대(97세대)의 바통을 이어 2010년대 한국농구의 주역으로 불리는 '08세대(2000년대 학번-1980년대생)'의 중심이었다.
지금까지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2007년 VS 2008년 중 어디가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인지 종종 논쟁이 벌어질 정도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높이 면에서는 2008년이 우세하지만, 선수층이나 종합적인 커리어 면에서는 2007년 드래프트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 눈물 흘리는 양희종 7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GC 양희종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한 시대를 풍미한 08 황금세대들이 하나둘씩 영광의 선수시절을 뒤로 하고 역사속으로 퇴장하고 있다. 올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한 안양 KGC 인삼공사의 캡틴 양희종을 비롯하여 원주 DB의 윤호영, 수원 KT의 김영환이 2022-2023시즌을 끝으로 연이어 '아름다운 은퇴'를 선언했다.
세 선수 모두 1984년생 동갑내기이자 2010년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포워드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윤호영의 경우, 다소 늦은 나이에 농구에 입문하여 1년을 유급하여 원래 나이보다 한 학년 적은 동기들과 프로 데뷔를 함께 했다.
이들 중 가장 축복받은 커리어를 보낸 선수는 단연 양희종이다. 걸출한 선수들이 즐비했던 2007-2008 드래프티와 08 황금세대 중에서도 양희종은 함지훈(울산 현대모비스)과 더불어 모든 프로선수들의 꿈인 '우승+원클럽맨'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선수생활을 보낸 선수로 꼽힌다.
양희종은 2007년 1라운드 3순위로 데뷔한 이후 16년의 선수생활 동안, 상무 시절을 제외하면 오직 안양 KGC 인삼공사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구단이 거둔 4회의 챔프전 우승과 2회의 통합우승,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 초대 우승 등 영광의 순간들을 모두 함께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 차례의 우승을 이끌며 구단과 모든 영광의 역사를 함께했고, 국가대표로도 10년 넘게 활약하며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양희종은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이라는 영예까지 안게됐다.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했던 08 황금세대 중에서도 영구결번은 양희종이 유일하다. 여기에 출전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KGC가 올해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은퇴 시즌을 우승으로 마감하는 유종의 미를 거둔 것도 빛난다.
한편으로 이러한 놀라운 업적을 이뤄낸 양희종이 정작 화려한 득점원이나 에이스가 아닌 '블루워커'의 대명사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양희종은 프로통산 618경기를 뛰면서 평균 득점 6점, 리바운드 3.7개로 기록상으로는 지극히 평범하다. 오죽하면 양희종의 대표적인 별명이 눈에 띄는 기록이 없다는 의미에서 '무록'일 정도다.
양희종의 진가는 수비와 허슬플레이로, 2014년 최우수수비상과 5년 연속 수비 5걸 등 커리어에서 수비 관련 개인상만 역대 최다인 7개나 받았다. 또한 1차 스탯은 초라하지만, 2012년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위닝샷, 2017년 챔프전 시리즈 3점슛 성공률 56% 등 큰 경기와 결정적인 순간에 강해지는 '빅게임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항상 개인기록보다는 팀이 요구하는 역할을 위하여 희생한 선수의 대명사였던 양희종의 커리어는 '수비수도 레전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블루워커의 위상을 바꾼 선수로 꼽힌다.
DB 지탱해준 프랜차이즈 스타 윤호영
'제2의 김주성'으로 꼽힌 윤호영은 2008년 드래프트에서 DB 전신인 원주 동부의 지명을 받은 뒤 역시 15년 동안 원클럽 맨으로 활약했다. 정규리그 통산 기록은 516경기에서 4002득점 2248리바운드 1148어시스트(평균 7.8점 4.4리바운드 2.2어시스트)를 달성했다.
커리어하이인 2011-2012시즌에는 김주성 현 DB 감독, 로드 벤슨과 함께 '트리플타워'을 쌓으면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선정됐다. 같은 해 데뷔한 2008년 드래프티 중에서는 유일무이한 MVP 수상자다.
2012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양희종과 '악연의 라이벌리'는 지금도 역대급 명승부로 회자된다. 당시 소속팀의 정규리그 우승과 MVP까지 수상하며 승승장구하던 윤호영에게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양희종이 언론플레이로 도발하면서 신경전이 벌어졌고 두 선수는 챔프전 내내 매치업을 이루며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두 선수의 활약상은 용호상박이었지만 KGC가 6차전에서 양희종의 위닝샷으로 극적인 업셋 우승을 달성하며 최종승부는 결국 양희종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이후로도 윤호영은 양희종과 비교하면 묘하게 커리어가 꼬인 측면이 있다. 한 팀의 원클럽맨으로 훌륭한 선수생활을 보낸 윤호영이지만. 양희종과 달리 은퇴할 때까지 챔프전 우승과는 단 한 번도 인연이 없었고 준우승만 무려 4번이나 차지했다. 국가대표에도 여러번 발탁되었던 윤호영이지만, 하필 양희종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탈락했다.
'제2의 김주성'이라는 데뷔 당시의 평가에 비하면 잦은 부상으로 재능을 다 만개하지 못한 편이었다. 하지만 조용하고 성실한 강자로 꼽히며 김주성에 이어 2010년대 DB를 지탱해준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업적은 변함이 없다.
'대기만성'의 상징 김영환
윤호영과 같은 날 은퇴를 선언한 김영환은 '대기만성'의 상징으로 꼽힌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순위로 지명돼 부산 KTF(현 수원 KT)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영환은 2012~2013시즌부터 창원 LG에서 뛰었다. 2016~2017시즌 도중 조성민(현 안양 KGC 코치)과 트레이드돼 KT로 돌아왔다.
김영환은 프로 통산 665경기에 출전해 평균 8.9점 2.8리바운드 2.0어시스트, 통산 3점슛 성공률 34.2%를 기록했다. 아쉽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고 커리어 초창기부터 부상에 시달리며 의문부호가 따라다녔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자기관리로 오히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동기들보다 더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김영환은 KBL 역대 6번째로 281경기 연속 출전(2014년 3월 9일~2019년 11월 3일)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무려 10년 넘게 가는 팀마다 주장을 맡아 KBL 최장수 캡틴이라는 이색적인 기록도 보유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격언의 표본이 바로 김영환의 선수인생을 요약한다.
양희종-윤호영-김영환 모두 선수인생의 굴곡은 있었지만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한 시대를 풍미하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고, 프로 경력을 시작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이제는 친정팀에서 지도자로서 새 출발하며 '제2의 농구인생'을 앞두고 있다. 또한 2007-2008년에 데뷔하여 KBL을 이끌었던 08 황금세대도 함지훈 정도를 제외하면 올시즌을 기점으로 대부분 은퇴하게 되면서 사실상 한 시대의 피날레를 장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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