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박사의 성경 속 이야기/에스더(1)-왕비가 된 고아소녀

이정미 2023. 5. 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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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박사

유대교는 매년 5대 절기마다 ‘두루마리 오경’(The Festival Scrolls)을 낭독했다. 즉 유월절의 아가서와 맥추절의 룻기서 또한 초막절의 전도서와 예루살렘 멸망 기념일의 애가 그리고 부림절기의 에스더이다. 여기서 여성 이름이 책 제목이 된 것이 룻기와 에스더서인데, 이들 여 주인공은 인간 역사의 배후에서 은밀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흥미로운 점은 성경 본문에서 야훼(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책이 에스더라고 한다. 이것은 A.D. 90년 얌니아(jamnia) 회의에서 정경으로 채택됐다.

에스더서의 시대적 배경은 당시 신 바벨론을 정벌하고 근동 전역에서 패권을 잡은 바사왕국이다. 바사의 아하수에로 1세(B.C. 518년~465년)는 인도로부터 구스(Cush:에디오피아)까지 127개 지방을 다스리던 왕이었다. 그는 재위 3년(B.C. 483년) 수산 궁에서 자신의 부와 권세를 과시하고자 매우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그는 아마 헬라 원정을 위해 각 지방 수령과 고관대작을 소집해 전략을 짤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축제는 약 6개월 동안 지속됐다. 그 후에도 왕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궁궐 뜰에서 약 7일 동안 화려한 연회를 베풀었다. 왕후 와스디도 내궁에서 왕족 여인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향연을 즐겼다.

근데 사달이 났다. 취기가 거나하게 오른 왕은 주흥을 돋우려고 내시를 통해 왕비를 불렀다. 왕비는 자신이 그의 소유물로 취급당하는 동시에 뭇 남성의 눈요깃감이 되는 사실에 모멸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왕비의 불응에 체면이 구겨진 왕은 므무간을 비롯한 7명의 법률 자문관에게 처벌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들은 무례한 와스디를 쫓아내고 ‘그보다 나은’ 새 왕비를 맞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B.C. 481년 재개된 헬라 원정은 참패로 끝난다. 아하수에로 왕은 B.C. 480년 살라미스(Salamis) 해전에서 결정적 타격을 입고 소아시아 서부 연안으로 후퇴했다. 한편, 바사의 도성 수산에 유대인 모르드개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베냐민 자손이며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다. -B.C. 536년 스룹바벨과 함께 제 1차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인물 중에도 모르드개라는 동명이인이 있다.- 그는 부모를 여읜 사촌 여동생, 하닷사(에스더)를 친딸처럼 양육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B.C. 479년 늦가을, 힘겨운 전쟁을 세 차례나 치른 왕은 사르디스(Sardis)에서 잠시 머물다 수산 궁으로 돌아온다. 왕의 심기를 눈치 챈 신하들은 그의 우울함을 달래주기 위해 약 400여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궁궐로 초대한다. 에스더도 뽑혔다. 그녀는 양부의 충고대로 자기 민족과 신분을 숨겼다. 그녀는 궁중예절과 법도를 몸에 익힌 후 마침내 황후로 간택됐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두 환관, 빅단과 데레스가 반역의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궁중 내시 바르나바수스가 그 계략을 알아차리고 모르드개에게 告한다. 그는 이 사실을 에스더를 통해 왕에게 알렸다. 왕은 그들을 교수대에 매어달았다. 그런데 자기목숨을 지켜준 모르드개에게 어떤 보상도 하지 않고 다만 서기관에게 그의 이름을 기록해 놓으라고 지시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II, 41: 이하 ‘Josephus’) 몇 년 지나서 소수민족 출신의 기회주의자, 하만이 왕의 총애를 입는다. 그는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이다. 그가 왕의 최측근이 된 것은 어쩌면 많은 정치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중에 하만은 모르드개와 유대인을 도륙하기 위한 조서를 얻으려고 은 1만 달란트(약 730억)를 왕에게 상납한다.-

하만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다. 바사 왕은 신복들에게 재상 앞에서 무릎 꿇어 절하도록 명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은 예외였다. 대궐 문에 앉아있는 모르드개였다. 사울의 후손인 그가 아말렉 족속인 그에게 고개 숙여 엎드리는 일이 치욕스러운 행위였을까?(삼상 15:8) 에스더기는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하만은 화가 치밀었다. 그의 불순한 주변세력이 모르드개의 출신민족을 확인해 (그에게) 보고했다. 그는 개인적 감정에 민족적 혐오까지 덧붙여 유대인을 전멸시키는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를 획책한다.

B.C. 474년 봄, 하만은 그의 무리와 함께 제비(‘푸르’:진흙을 구워서 만든 주사위)를 뽑아 유대인 학살의 ‘달’(月)과 ‘날’(日)을 택했다. 동시에 하만은 왕의 윤허도 받아야 했다. 그는 왕에게 나아가 말하길, 한 민족이 자신들의 관습과 전통이 있어서 바사의 법률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다고 교묘히 비난했다. 그런데다가 그들이 제국 안위에 위협적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들을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백해무익하다고 모함했다. 결국 간악한 하만은 천문학적 금액을 왕에게 바치는 대가로 “십이월 곧 아달월 십 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대인들 노소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에 3:13)는 칙령을 승인받는다.

이정미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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