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덕연게이트]진화한 라덕연 일당 수법…과거 작전세력과 다른 점 3가지
다수 투자자 끌어모으고 CFD로 레버리지 일으켜
골프연습장·식당·승마리조트 등으로 수수료 챙겨
검찰이 10일 늦은 오후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호안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수사가 본게임으로 접어들고 있다. 소송으로 피해액 일부라도 돌려받길 바라는 피해자들은 삼천리·다우데이터·서울가스 등 8개 상장사 주가가 오르고 내린 과정이 낱낱이 밝혀지길 희망하고 있다. 감독당국을 비롯해 자본시장 업계 관계자 역시 라 대표가 투자자를 모집하고 주식을 매집하는 과정, 엑시트(투자금 회수) 계획 등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자 명의 휴대전화로 주문해 감시망 피해
증권 전문가들은 라 대표가 적어도 3년 전부터 투자자를 모아서 주가를 올렸는데,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 등의 감시시스템에 걸리지 않았던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합동수사팀은 라 대표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무등록 투자일임업, 범죄수익은닉법 등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라 대표가 주장하는 대로 다우데이타·서울도시가스 등 이번 사태 관련 8개사의 주가가 급락하는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식을 불법적으로 매집했다면 처벌할 수 있다.
라 대표에게 투자했던 일부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라 대표가 3년 이상 주식 매집을 하는 과정에서 과거 주가 조작 세력과 달랐던 점은 투자자 명의의 스마트폰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투자자가 허용하면서 감독당국의 감시체계는 무용지물이 됐다. 스마트폰으로 전국 각지에서 주문을 내면서 IP 주소를 추적할 수 없게 됐다. 불특정 다수가 정상적으로 거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려면 신분증을 보내고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로 확인하는 과정 등을 거쳐야 한다"며 "도용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이 존재했지만 정작 당사자가 허용해주면서 무력화됐다"고 설명했다.
IP 추적은 감독당국의 오랜 감시 기법 중 하나다. 과거 주가 조작 세력은 다수의 계좌를 동원하더라도 주식 매매는 대개 특정 장소에서 모여서 했다. 소수 계좌로 주식을 사고 팔면 증권사나 한국거래소 감시 시스템에 포착되기 쉽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시장감시규정에 따라 투기적이거나 불공정거래 개연성이 있는 종목을 투자주의종목으로 공표한다. 감시시스템은 ▲소수지점 거래집중 종목 ▲소수계좌 거래집중 종목 ▲단일계좌 거래량 상위종목 등을 걸러낼 수 있다. 주가 조작을 모의하는 과정에서 다수 계좌부터 확보하는 이유다.
그러나 직접 매매에 관여하는 이들은 소수다. 실제로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실수하거나 배신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한다고 하지만 IP는 소수에 불과하다. 감독당국은 계좌 명의가 달라도 IP 주소가 같으면 감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당국이 시스템을 개선해 주가 조작 세력을 적발하면 작전세력은 이를 학습해 다시 진화한다. 금융감독원은 2018년 전국적으로 아르바이트 직원을 모집하고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규모로 주식 시세를 조종한 일당을 적발했다.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서울 은평구, 인천 남구, 경기 용인시 등지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면서 작전세력의 지시에 따라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렸다. IP 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5년간 시세를 조종했다.
라 대표 일당은 MTS를 활용해 기존 감시 시스템으로 걸러낼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 거래량이 적은 종목을 매집했다. 검찰은 라 대표 사무실에서 200여개에 이르는 투자자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주식을 거래하는 데 동원한 휴대전화로 보인다. 200여개 또는 그 이상의 휴대전화로 주식을 거래하면서 허수성 주문, 통정·가장성매매 등 감독당국이 중점적으로 감시하는 불건전 주문으로 보이지 않도록 꾸몄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행 시스템은 불건전 주문으로 보이는 주문을 반복해서 제출하는 계좌에 유선경고, 서면경고, 수탁거부예고, 수탁거부 등 단계별로 주의를 준다. 라 대표 일당은 전문직 종사자와 자산가, 연예인 등 다양한 투자자로부터 MTS 계좌를 개설한 휴대전화를 받아 이런 감시 시스템을 피해갔다.
명동 사채 대신 개인 투자자 돈 끌어모아
라 대표는 여러 인터뷰에서 본인 계좌를 보여주며 "손실이 났다"고 했다. 본인 자금도 투자했지만 삼천리·다우데이터·서울가스 등의 주식을 매입한 대다수 자금은 투자자 계좌에서 나왔다.
과거 주가 조작 사건에서는 명동 또는 강남에서 사채자금을 끌어와 상장사 경영권을 인수하고 주가를 끌어 올려 시세차익을 내거나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이른바 무자본 인수·합병(M&A)이다.
최근 검찰이 재판에 넘긴 반도체 전문 코스닥 상장사 A사의 경영진도 무자본 M&A로 경영권을 확보한 후 회삿돈 155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공사로부터 받은 공사대금을 빼내 빚 상환 등 개인 용도로 썼다. 2017년 코스닥 상장사 와이디온라인 주식을 냉장고 판매업체 클라우드매직 자본으로 인수한 것처럼 꾸며 200억원대 부당이득을 취한 일당이 재판에 넘겨져 징역 10년과 벌금 3억원을 확정받기도 했다. 당시 실제 매수 자금은 사채업자들의 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채자금을 이용해 상장사 경영권을 인수하면 높은 이자 때문에라도 주가 조작 기간을 길게 가져가지 않는다. 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시세차익을 얻은 후 채무를 상환한다. 일부는 경영권을 확보하자마자 회사 자금을 이용해 빚부터 갚기도 한다.
무자본 M&A 방식은 단기간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가 많아서 감독당국의 감시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주가가 단기간 급등했다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피해를 본 개인 투자자들이 감독당국에 민원을 넣기도 한다. 작전엔 성공하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처벌을 피하기가 어렵다.
라 대표는 전형적인 '판돈' 조달과 다른 길을 택했다. 이자를 주지 않아도 되고 수익을 올렸을 때 수수료도 받을 수 있는 투자자를 모집했다. 수사에서 드러나겠지만 주가 조작에 얽힌 상장사 규모를 고려했을 때 라 대표에게 자금을 맡긴 투자자는 수백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중견 그룹 오너, 고액 자산가,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연예인 등이 라 대표에게 돈을 맡겼다.
아직 라 대표가 투자자를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가수 임창정이 투자자 모임에 참석해 투자를 유도하는 발언을 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과 윤성태 휴온스그룹 회장 등도 라 대표에게 투자했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주식 전문가로만 알려졌던 라 대표가 처음부터 유명 인사들과 접촉해 투자를 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투자 종목 주가가 상승하면서 계좌를 통해 수익률을 인증할 수 있었던 시점부터 투자금은 빠르게 늘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초기에 자산가들을 소개해 준 커넥션이 있었을 것"이라며 "선광이나 세방 등의 주가가 3년 동안 꾸준하게 오르면서 저평가 자산주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낸다는 라 대표의 말에 힘이 실렸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다양한 법인수수료 받는 방식도 진화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를 받으면 투자 수익에 따른 수수료 정산과 비밀 유지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투자자 좋은 일만 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라 대표는 투자금으로 주식을 꾸준하게 매입하면서 투자자로부터 수수료를 정산받는 방식으로 현금을 챙겼다. 다만 본인의 투자 관련 법인을 통해 수수료를 받으면 문제가 될 것을 고려해 골프연습장, 식당, 병원, 갤러리, 헬스장, 승마 리조트 등 투자와 무관한 사업장을 동원했다. 라 대표에게 투자했다 거액의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라 대표가 수수료를 받기 위해 다양한 사업장을 동원했다"고 입을 모았다.
라 대표는 다양한 법인을 활용해 수익금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받으면서 이른바 '카드깡' 방식을 동원했다는 의혹, 외국에 골프장 등 부동산을 사들여 주가 조작으로 실현한 차익과 수수료를 빼돌리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합동수사단은 라 대표와 함께 전직 프로골퍼인 안씨도 체포했다. 안씨는 라 대표가 투자자들에게서 수수료를 회수하는 창구로 쓴 것으로 알려진 골프아카데미 대표다. 케이블 채널 운영사와 승마 리조트도 운영했다. 검찰은 라 대표가 외국에 골프장을 비롯한 부동산에 투자한 것에 주목하며 범죄 수익을 해외로 빼돌리려 했다는 의혹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적지 않은 투자자가 몰려지만 지난달 주가 급락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감독당국은 이상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투자 권유를 하는 과정에 과장이 있을 수도 있고 이를 충족하지 못했을 땐 라 대표 측과 투자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더구나 많은 수익을 본 투자자는 주변에 자랑하면서 라 대표 이름이 여의도 증권가에서 회자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지난해 말 각종 주식 게시판 등에서 대성홀딩스·서울가스·삼천리 등은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며 투자자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꾸준하게 이익을 내지만 성장률은 높지 않은 종목들이 별다른 조정없이 상승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종목 게시판 어디에도 특정 세력의 매집 내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업 투자자 사이에서도 세방과 선광 주주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 전업 투자자는 "밤새 뉴욕 증시를 들여다보고 매일 조간을 보면서 단기 트레이딩을 했지만 선광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했다"며 "그 흔한 투자경고 한번 받지 않고 주가 상승에 따른 조회공시 요구도 받지 않으니 상승 이유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라 대표가 주관하는 행사에 가수 임창정이 참석했던 것을 보면 투자자 모임을 종종 가졌던 보인다. 투자 독려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이 주의할 사항을 전달하는 자리였을 것이라고 증시 전문가들은 추측했다. 최소 3년간 주가 상승과 이에 따른 수수료를 잘 챙겼지만 올 초 빈틈이 생겼다. 제보를 받은 언론사가 취재를 시작했고 감독당국도 뒤늦게나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번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로 자본시장 질서에 경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가 진상파악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투자피해 사례와 함께 라덕연 측의 주가조작 및 자산은닉 정황, 다우데이터·서울가스 대주주의 대량매도 관련 내막 등 어떤 내용의 제보든 환영합니다(jebo1@asiae.co.kr). 아시아경제는 투명한 자본시장 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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