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
서지영 2023. 5. 11. 07:08
“그 국물의 색깔은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고, 그 맛은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이다. 차마 안쓰러운 이 국물은 그 안쓰러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데워준다.”
소설가 김훈이 어느 산문집에서 재첩국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맛칼럼니스트를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재첩국을 먹으며 약육강식의 지구적 질서를 조망하고 그 질서 안에서 겨우 살아내는 인간을 위무하는 도저한 인문학적 상상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맛칼럼니스트는, 어제도 오늘도 또 앞으로도, 부추가 둥둥 떠 있는 재첩국을 휘휘 저으며 바닥에 깔린 재첩 살의 양이 적당한지 계산하는 일에 복무할 뿐입니다.
재첩은 민물조개입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하구에서 잘 자랍니다. 섬진강 사람들 말로는 밀물 때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유역까지의 재첩이 맛있다고 합니다. 약간의 “간끼”가 불어야 맛있다는 것이지요.
간끼는 바다조개 같은 바다 생물에 붙어 있는 맛입니다. 염도가 3~4인 바닷물의 맛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개를 굽거나 삶았을 때에 나는 바다의 내음이 간끼의 냄새입니다.
우리는 바다조개에 익숙합니다. 먹을 수 있는 민물조개가 있기는 하나 이를 먹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바다조개에 붙어 있는 간끼가 조개 맛의 기준으로 잡혀 있습니다. 재첩은 약간의 간끼를 낼 뿐입니다. 조개인데 조개 같지 않은 여린 맛이 재첩에 있습니다.
김훈의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이라는 표현은 여느 조개류를 재첩과 비교하였을 때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맛칼럼니스트는, 저는 “조개류 중에 제일 여린 맛을 낸다”고 하고 끝낼 것을 김훈은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이라고 한 것이지요.
재첩 하면 다들 섬진강을 떠올리는데, 예전에는 낙동강, 영산강, 한강 등 여러 강에도 있었습니다. 하구에 둑을 세우고 강바닥의 모래를 파내면서 재첩이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재첩을 품고 있는 섬진강은 참 다행입니다.
재첩은 봄과 가을 두 번 맛있습니다. 4~6월과 9~11월입니다. 저는 늘 봄에 섬진강에 가서 재첩국을 먹었던 터라 가을 재첩국의 맛은 모릅니다. 안날에 섬진강 봄과 권커니 잡거니 술을 나누고 아침에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은’ 재첩국을 놓고 해장으로 술잔을 다시 기울이면서 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30년 전 즈음 어느 해 늦은 봄이었다. 그때에도 저는 섬진강에 갔습니다. 하동에 재첩국 행상이 아직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새벽에 “갱조개국 사이소” 하면서 동네를 돈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에 나서야 했기에 읍내 여관에서 일박을 했습니다.
캄캄한 새벽에 하동 시외버스 터미널 근방 큰길에서 “재첩국 사이소” 하는 소리를 쫓아가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리어카에 비닐로 꼭꼭 싼 동이와 그릇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재첩국 장사를 했다는 할머니는 처음 보는 저에게 신세 한탄을 했습니다.
“얼라 업고 갱조개국 동이를 머리에 이고 팔려 다녔제. 사람들이 ‘얼라 머리 넘어진다’고 해쌌고…. 새벽 1시에 일어나 3시까정 국 끓이고. 옛날엔 경전선 타고 진주까지 나갔제. 그때는 한 서른 명이 갱조개국 팔았는데.”
할머니는 두어 시간 주택가를 돈 후에 터미널 앞에 좌판을 벌였습니다. 거기에는 세 분의 재첩국 행상 할머니가 더 계셨습니다. 그때 취재 이후 재첩국 행상 할머니의 존재를 수시로 확인하였습니다. 마침내 할머니들은 다 보이지 않게 되고, 한 할머니의 딸이 그 자리를 지키기는 것까지만 확인하고 더 이상 취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안쓰러움의 대상은 사라져도 안쓰러움은 여전히 제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때에 재첩국 행상 할머니에게서 재첩국 맛있게 끓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냄비에 재첩을 넣고 물은 냄비 바닥에 깔릴 정도만 부어야 한다.” 그러니까, 재첩의 몸에서 나온 물이 재첩국입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는 안쓰러운 사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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