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덕연게이트]라덕연에 투자한 사람들, 손해배상 받을 수 있을까
라덕연 일당의 시세조종 혐의 입증이 소송의 관건
“미등록 투자자문 업체에 투자한 것 자체가 문제” 지적도
검찰이 소시에테제네랄(SG)발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호안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이번에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라덕연 일당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속속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번 사태로 피해 규모가 수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라 대표의 시세조종 혐의를 입증하는 게 소송의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라덕연 일당과 증권사 상대 잇단 소송
11일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한누리는 이번 사태로 손실을 본 투자자를 대상으로 피해 접수를 받고 있다. 박필서 한누리 변호사는 “사건의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만큼 당장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이뤄지기는 어렵겠지만,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에서 시세조종 의혹을 사실로 밝혀낼 경우 손해를 입은 투자자는 피해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커서 미리 피해 접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송인단을 모집해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던 법무법인 대건은 9일 서울 남부지검에 라덕연 대표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업무상 배임), 범죄수익은닉 규제와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민사소송 전 검찰 수사로 라 대표 등 시세조종 일당이 어떤 방식으로 주가 조작에 나섰는지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대건 측은 피해 금액을 8000억~1조원으로 추산했다. 피해를 본 투자자는 1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라 대표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여간 투자자 1000여명으로부터 투자금 약 1조원을 모아 레버리지를 이용해 2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운용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이강도 지난 1일 피해자 10여명을 대리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주가 조작 일당을 수사해달라며 서울남부지검에 우편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는 증권사 대상의 소송 원고를 모집 중이다. 원앤파트너스 측은 “위험성이 큰 신용거래가 가능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개설하면서 직접 계좌 개설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증권사의 행위는 위법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CFD 사업을 하는 증권사는 키움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삼성증권·메리츠증권·하나증권·신한투자증권 등 13곳 정도다. 이 중 SG증권과 CFD 계약을 맺은 증권사는 등 4~5곳 정도다.
혐의 입증이 중요…일부 피해자들 공범 분류 가능성도
검찰이 라덕연 대표와 조력자들을 체포해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한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법조계는 투자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성립하려면 시세조종 혐의가 입증돼야 한다고 말한다. 투자자들은 현재 크게 라 대표를 포함한 시세조종 일당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만약 수사기관에서 라 대표의 시세조종 등 불법 행위를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배상 청구가 이뤄지긴 어렵다.
라덕연 일당의 불법 행위 여부에 관계없이 애초 그들에게 돈을 맡긴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라 대표가 금융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투자자문 업체를 운영하며 투자자를 모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불법 업체에 투자한 행위라 피해보상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손해를 본 투자자들 모두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피해자를 유형별로 보면 ▲CFD 투자 과정을 모두 알았던 투자자 ▲CFD 투자인지를 몰랐다고 주장하는 투자자 ▲주가 폭락의 피해를 받은 일반 투자자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CFD 투자 과정을 모두 알았던 투자자는 형사적으로 공범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해당 투자자가 라 대표의 범죄행위를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를 미필적 고의로 해석해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필서 변호사는 “투자금을 사기나 시세조종 용도로 이용했거나 계약과 달리 무단으로 CFD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는 점이 드러난다면 계약상 위반과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등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 모든 것은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밝혀진 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시세조종 사태와 전혀 상관없이 피해를 본 선량한 개인 투자자는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가 폭락이 CFD가 청산되는 과정에서 반대매매 때문에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외 변수가 작용했는지 진상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증권사 대상 피해보상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불법적인 거래로 막대한 빚을 지게 됐다며 증권사 추심 행위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번 사태와 관련된 증권사들은 “CFD 관련 비대면 계좌 개설은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며 위험 고지 동의도 다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김광중 한결 변호사는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라 대표 일당에 주고 이용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은 금융당국이 일차적으로 마련한 본인 확인 시스템, 즉 보호막을 스스로 던져버린 것”이라며 “현재 증권사가 추심을 하는 것은 계약상 정상적인 영업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수 채권에 증권사 2분기 실적 경고음
CFD는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일정 증거금(결제금액의 40%)만 보유하면 최대 2.5배의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다. 차액은 모두 증권사가 결제한다. 주가가 오르면 문제 없지만 떨어지면 관련 손실은 개인 계좌에 찍히게 된다. 이때 개인은 증거금 기준을 맞추기 위해 돈을 더 채워 넣어야 한다. 만약 증거금을 채우지 못해 ‘마진콜’이 발생하면 증권사는 반대매매를 실행한다.
다만 반대매매를 실행한 후에도 미수금이 있다면 레버리지를 일으킨 증권사도 손실을 입을 수 있다. CFD 계약 구조상 국내 증권사는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어 외국계 증권사가 실제 주식을 매매하는데, 국내 증권사는 외국계 증권사에 손실액을 우선 변제하고 나중에 해당 금액을 개인에게 청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해당 투자자가 손실금을 정해진 기일 안에 입금하지 않으면 증권사는 추심에 들어간다. 재산을 추적해 가압류 등의 조처를 한다.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자들로부터 회수하지 못한 미수채권은 최대 1조원대로 추정된다. 특히 올해 증권사들이 CFD 마케팅을 강화한 탓에 거래 잔액이 많이 늘어나 피해 규모가 더 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13개 증권사의 CFD 거래잔액은 2조7700억원으로 지난해 말(2조3254억원)보다 4400억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신용융자 거래에 따른 반대매매 액수까지 더하면 증권사들이 받지 못한 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로 증권사들의 2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까지 추심으로 미수 금액을 줄일 순 있겠지만 이번에 확정된 손실액은 6월 말 반기보고서 미수금 항목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들도 이번 사태의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임희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CFD 신규 가입 중단과 금융위원회의 CFD 제도 개선 등으로 CFD 관련 손익이 위축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키움증권은 대주주인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된 의혹까지 더해져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해외 주식 시장점유율 하락과 예수금 감소, 활동 계좌 수 감소 등이 우려된다”며 “근본적인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로 자본시장 질서에 경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가 진상파악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투자피해 사례와 함께 라덕연 측의 주가조작 및 자산은닉 정황, 다우데이터·서울가스 대주주의 대량매도 관련 내막 등 어떤 내용의 제보든 환영합니다(jebo1@asiae.co.kr). 아시아경제는 투명한 자본시장 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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