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거슬러간 양현종의 129km 직구, 영리한 투구

이형석 2023. 5. 11.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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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KIA 타이거즈 양현종(35)은 영리하다. 세월을 '역습'하고 있다. 

양현종은 올 시즌부터 비장의 무기를 하나 추가했다. 투수들이 던지는 구종 중 가장 빠른 '포심 패스트볼(four-seam fastball)'을 일부러 낮은 구속으로 던지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던지기 위해서다. 

양현종은 지난 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 김광현(6이닝 3실점)과의 역대 7번째 선발 맞대결에서 8이닝 6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완승했다. 

결과 못지않게 돋보였던 건 양현종의 포심 패스트브로 구속 차이였다. 이날 총 101개의 투구 중 포심 패스트볼 비중은 50%를 살짝 넘겼다(101개 중 52개). 포심 패스트볼 구속차가 무려 17㎞나 됐다. 최고 시속은 146㎞, 최저 시속은 129㎞였다. 이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최고 시속 130㎞였는데, 이보다 구속이 떨어지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진 것이다. 

이날 포심 패스트볼 최저 시속 129㎞는 7회 1사 박성한과의 승부에서 던진 3구째였다. 그런데 양현종이 이날 8회 마지막으로 던진 101번째 공은 역시나 포심 패스트볼로 시속 141㎞가 나왔다. 시속 129㎞ 느린 속구는 힘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던진 것이다. 양현종은 130㎞ 초반의 포심 패스트볼을 간간이 던지기도 했다. KIA 전력분석팀은 "흔히 직체라고 하는데, 직구인데 완급조절용으로 구속을 낮춰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현종이 밝힌 이유는 "나도 예전 같지 않아서"였다. 그는 "강하게 윽박지르면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던진 것"이라고 했다. 

양현종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50㎞ 이상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엔 평균 시속 142.4㎞를 기록했다. 올 시즌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141.5㎞에 그친다. 양현종도 언제까지 힘을 앞세워 던질 수는 없다.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예전 같은 빠른 공을 던지기 쉽지 않다. 양현종도 인정한다. 그래서 힘을 비축할 수 있을 때 완급 조절을 통해 영리한 투구를 하고 있다. 

속구와 변화구를 섞는 완급 조절뿐만 아니라 투구 비중이 가장 높은 포심 패스트볼 역시 속도 차를 활용해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무기로 장착했다. 

그렇다고 양현종이 '쉽게' 느린 속구를 던지는 건 아니다. 구속을 낮춰 던지지만 공에 힘이 있어야만 한다. 양현종은 "이번 스프링캠프부터 꾸준히 연습했다"라고 밝혔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무턱대고 던졌다가 장타를 허용하거나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는 "선발 투수를 오래 경험하다 보니 (타자 유형을 파악해) 볼카운트 싸움에서 배트를 내지 않을 것 같을 때 구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과 영리함이 양현종을 KBO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양현종은 이날 개인 통산 161승을 달성, 정민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KBO리그 최다승 공동 2위로 올라섰다. 
그는 더 멀리 내다본다. 양현종이 밝힌 다음 목표는 송진우가 갖고 있는 KBO리그 최다승(210승) 돌파다. 양현종은 "너무 먼 목표"라면서 "쫓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겠다"고 약속했다. 

양현종은 "몸이 예전 같진 않다"고 인정했다. 다만 "게으름 피우진 않는다. 계속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앞으로도 기대하셔도 좋다"고 다짐하고 약속했다. 

오랫동안 선의의 경쟁을 펼친 김광현(통산 151승)을 향해서도 응원을 보냈다. 그는 "로테이션을 같이 돌아도 (앞으로) 만날 일이 (특별히) 없을 거라 생각해 오늘 이기고 싶었다. 이런 맞대결을 더 이상 안 했으면 한다"면서 "(김)광현이와 라이벌이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이제는 야구를 오래 같이한 동반자이자 친구라는 표현이 더 알맞다. 나도 이기고 광현이도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서로 부상 없이 오래 야구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광주=이형석 기자 ops5@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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