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해도 직접 약국 가야 할까… ‘약 배송’ 운명은
‘약 배송’ 허용 여부 불투명… 유관단체 협의 시작도 못해
약사들 “음식처럼 약 배송해서 되겠나… 마약 거래 위험도”
비대면 진료 서비스가 존폐 기로에 섰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비대면 진료가 다시 금지되는 탓이다. 정부는 일단 시범사업 형태로 공백 없이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다만 약 배송에 관해선 유관단체 협의나 규제 논의 등을 진행한 적이 없어 포함될지 불투명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11일 회의를 열고 일상회복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확진자 격리의무 완화 등을 밝히며 코로나19 비상사태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엔데믹(일상적 유행)을 선언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회의에서 코로나19 위기단계가 하향 조정되면, 비대면 진료는 이전처럼 ‘불법’이 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 2020년 2월24일, 한시적으로 허용됐을 뿐 관련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 진료를 보도록 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환자가 전화나 영상 통화로 진료를 받으면 처방전이 동네 약국으로 가고, 약은 택배업체를 통해 환자의 집으로 배달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국회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 방안을 논의했으나 초진·재진 허용 범위 등을 두고 마찰을 빚으며 심사가 보류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급한 대로 ‘시범사업’을 통해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이어갈 방침이다. 시범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약 전달 방식이다. 약 배송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의료취약지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아도, 조제약은 직접 약국에서 가서 받아야 한다.
시범사업에 약 배송이 포함될 지는 미지수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복지부는 유관단체인 약사회, 약사단체 등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관련 협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의사단체와는 지난 2월9일 비대면 방식의 진료·처방을 두고 협의를 이룬 바 있다.
약사들은 시범사업에 약 배송이 포함될 경우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며 우려를 보내고 있다. 약 배송에 관한 관리·규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부작용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없는 탓이다.
실제로 무자격자가 비대면 진료 처방전을 무허가 수입의약품으로 조제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해당 사례를 포함해 9건의 약사법 위반사례가 적발돼 행정처분 및 고발이 진행됐다.
장동석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회장은 “약 배송을 허용하는 일부 국가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엄격한 규제를 통해 배송 체계를 관리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약 배송 체계는 마치 음식 배달하듯 개별 업체가 맡고 있다”면서 “약사들이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의 경우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한 젊은층 이용률이 높은데, 이들은 주로 질환을 치료하는 약이 아닌 오·남용 우려가 상당히 큰 식욕억제제, 탈모약 등을 배송시킨다”며 “특히 청소년들의 향정신성의약품이나 마약 노출 위험이 큰 상황에서 약 배송을 허용하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도 “비대면 진료를 3년 동안 시행했는데, 정부가 부작용에 대한 연구나 관련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시범사업을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유관단체와 약 배송에 대한 협의를 한 적이 없다. 국민 생명이 달린 일을 비대면 진료 업체를 살리기 위해 졸속으로 처리해서 되겠나”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제도로 안착시킬 수 있도록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사회는 현행 체제의 비대면 시범사업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며, 불가피하게 시범사업을 진행할 경우 △환자 중심 약국 선택권 보장 △플랫폼 개입 없는 약사 주도의 합법적인 약 전달 △비대면 플랫폼 업체 불법행위에 대한 관리·감독 기구 설치 △표준화·개방화된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 구축 △의약품 공급불안정 해소를 위한 동일성분조제 활성화 및 사후통보 간소화 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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