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경제 인질로 삼지마...조건없이 부채한도 상향해야"
미국의 부채한도 상향 협상을 두고 이르면 6월 초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과 타협 없이 한도 증액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자칫 부채한도를 상향하지 않아 디폴트로 이어질 경우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여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뉴욕주 발할라에 위치한 웨스트체스터 커뮤니티컬리지에서 연설을 통해 "공화당의 위협은 위험하고 말이 되지 않는다"며 "지금은 이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리고, 경기침체를 위협하고, 전 세계에서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부채 한도를 둘러싼 논의가 "워싱턴DC에 국한된 이론적인 논쟁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 실제 영향을 미칠 결정"이라며 전 세계에 미칠 여파도 우려했다.
이러한 발언은 전날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회동에서 부채한도 상향 논의를 둘러싼 해법을 찾지 못한 가운데 나왔다. 미국은 지난 1월 31조4000억달러 규모의 부채한도를 모두 소진했고, 직후 특별조치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원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은 현재 대규모 정부 지출 삭감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부채한도 상향에 반대하고 있다. 반면 백악관과 민주당은 부채한도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며 조건 없는 상향을 요구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 내 극단주의 세력을 가리키는 "마가"(MAGA)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부채 한도 상향에 반대하면서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지난달 하원에서 가결된 공화당 주도의 부채한도 법안을 '미국의 디폴트(default on America) 법안'이라고 규정했다. 해당 법안에는 공화당의 주장대로 국가부채 한도를 1조5000억달러 상향하는 대신, 기후변화 기금 폐지 등을 통해 2024년 연방정부 예산을 2022년 수준으로 맞추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의 주장대로 예산을 삭감할 경우) 의료, 교육, 안전, 보훈 등 수백만 중산층에 중요한 정부 정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 부채가 증가한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부유층과 대기업이 내는 세금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은 빚진 돈을 떼먹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돈을 갚는다"라며 채무 불이행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현금이 소진되는 X데이를 6월1일로 제시한 상태다. 사상 초유의 디폴트 사태에 빠져들 경우 수백만명에 달하는 실직, 금융시장 혼란 등 여파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부채한도 대치가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긴축 등으로 경제가 취약해진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달 초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디폴트에 따른 경제적 피해 시나리오를 공개하고, 3개월 이상 장기화 시 증시가 45% 폭락하고 일자리는 최대 830만개 사라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다만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어제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 간 대화는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길에 대한 생산적인 만남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앞으로 나아갈 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디폴트 문제는 의회가 해야 할 일"이라며 조건 없는 부채한도 상향을 반대하고 있는 공화당에 책임을 물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2일 의회 지도자들과 다시 회동할 예정이다. 그는 전날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오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불참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부채 한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년 만에 최소 상승 폭을 기록했다는 미 노동부의 발표 이후에도 성명을 통해 "이 모든 진전 속에서 하원 공화당이 디폴트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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