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발칵'... 대한민국 교육의 암울한 미래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포럼 사의재>와 함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전 영역에서 윤석열 정부를 집중진단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총 열 세 편의 글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그 일곱 번째로 교육입니다. <편집자말>
[포럼 사의재 교육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지난해 7월 29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진행된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만 5세 초등학교 조기입학'이 느닷없이 발표되었다. 대통령 선거공약은 물론 국정과제에도 없는 정책이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정책연구도, 사회적 협의 과정도 없었다.
여기에 한 술 더해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는 준비 안 된 아마추어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거센 반발과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만5세 조기입학 정책은 백지화됐고, 윤 정부의 첫 교육부장관인 박순애 장관은 취임 35일 만에 사퇴했다.
우왕좌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초 박순애 전 교육부장관이 밝혔던 '자사고 존치, 외고·국제고 일반고 전환' 방침 또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들어선 뒤인 11월 백지화 가능성이 언급됐다. 최근인 올해 4월에는 교육전문대학원 시범운영 계획을 무기한 유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말바꾸기, 발표하는 정책마다 갈등 증폭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22.2.14.) "지역 거점대학 1인당 교육비 투자를 상위 국립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수위 국정과제에서 이 공약은 "지역소재 연구중심대학 육성추진"으로 애매모호하게 바뀌었고, 고등교육 재정확대는 초중등교육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일부(1.5조)를 떼어내 대학교육재정에 사용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교원단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의 갈등은 첨예했고, 고등교육재정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대학 간에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국공립대와 사립대 간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문제는 갈등이 잠복된 정책이 많다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교육자유특구는 학교서열화를 심각하게 조장하고 교육불평등을 구조화할 가능성이 큰 정책이다. 이 외에도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하는 교육감선거제도 개편, 사학법인의 자율성을 높여주는 사립학교법 개정, 고등교육 권한을 지방정부로 대거 이양하는 정책 등 이미 예고된 갈등 의제가 지나치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교육정책의 설계, 추진 전 과정에서 현장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있다.
▲ 한 초등학교의 모습. |
ⓒ 연합뉴스 |
또한 인수위원회의 31개 교육분야 국정과제 중 교육부가 수용한 것은 7개에 불과하다. 즉, 대통령선거 교육공약이 국정과제 및 교육부 과제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국정운영 시스템'이 붕괴한 것이다.
이 자리는 교육부가 독자적으로 포함시킨 과제로 채워지고 있다. 올해 1월 교육부가 발표한 '4대 개혁분야-10대 핵심정책-22개 세부과제' 중 12개의 독자적인 과제가 신규로 포함되었다. 22개 세부과제 중 55%에 달하는데, 이 과제들은 하나같이 교육계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들이다.
교육자유특구, 교육전문대학원, 교육감 러닝메이트제가 대표적 사례다. '정상적인 국정 운영시스템'이 붕괴된 자리에 대통령의 말 바꾸기, 무모하고 독선적인 정책 추진으로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으로 후퇴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22.6.7)에서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공급"이라고 발언했다. 교육을 박정희 시대 때에나 통용되던 경제만능주의의 수단 혹은 산업발전의 도구 정도로 인식하는 것으로, 현 정부의 교육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역소멸, 인구감소, 4차산업혁명 등 복합위기 시대를 돌파할 교육시스템의 대전환에 대한 비전, 협력과 공존은 사라졌고, 대신 보수주의 권력이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자율과 경쟁, 선택과 집중이 재등장했다. 경쟁을 통해 선택받은, 경쟁에서 승리한 집단에게 집중적인 지원과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외고・자사고 확대)'가 윤 정부에서 교육자유특구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8년 국회의원 선거 때 이명박 정부가 뉴타운과 자사고 등 교육특구 정책을 묶어 교육을 상품화시켰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교육자유특구를 중산층의 계층상승 욕구를 자극하는 명품학교 만들기 공약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학교를 다양화하고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면 교육이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늘상 있어왔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실증되었고, 오히려 학교 다양화가 입시경쟁을 부추겨 고교 서열화와 교육 획일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정책의 결과는 다양화가 아니라 학교 서열화와 경쟁의 강화였음을 이미 경험하였다.
교육자유특구는 규제 완화를 통해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과 공급자 간 경쟁을 강화하고, 미국의 차터스쿨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학교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차터스쿨 정책 입안에 참여했던 교육 전문가 다이앤 래비치조차 실패를 인정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아직 정책연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정책을 서둘러 입법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만약 윤 정부의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우리 교육현장은 지독한 경쟁과 배제로 얼룩질 것이다. 인구절벽의 시대, 아이 한 명 한 명의 소중함이 절실한 상황에서 그러한 교육정책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폐해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
ⓒ 남소연 |
"교육부도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22.6.7)은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교육부는 물론 전 중앙부처가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양성에 집중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1년 가깝게 흐른 지금, 2024학년도부터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218명을 포함하여, 수도권 대학 입학정원이 817명 늘어난다. 현재 지방대의 심각한 입학생 부족 상황을 고려하면 수도권 대학 입학정원 확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가 지켜 온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라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가 공문구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간 지켜온 국정 운영의 기조가 무너진 것이다.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양성 정책은 윤석열 정부의 첫 작품이 아니며, 역대 모든 정부가 다양한 첨단분야 인재양성 정책을 펼쳐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시스템 반도체 집중 투자와 인재양성을 위한 정책(시스템 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기존의 성균관대(삼성전자) 외에 연세대・KAIST・포항공대(이상 삼성전자), 고려대・서강대・한양대(이상 SK 하이닉스) 등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했다.
계약학과는 기업과 대학의 계약기간 중에 학생을 선발하고, 선발 인원은 '정원 외'로 관리된다. 만약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선발 인원도 없어지는 것이다. 수도권의 주요 명문대 학생 입학정원을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양성을 위한 실질적인 해법이었던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특성화대학, 권역별 반도체연구소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인재양성을 실현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30년 만에 서울대 입학정원이 대폭 확대되었고, 20여 년 만에 수도권 정원도 덩달아 늘어났고 지방대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노동, 교육, 연금개혁을 '3대 개혁'으로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교육개혁의 방향과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 지난 1년간 교육분야는 장관 후보자와 장관이 연달아 낙마하거나, 발표된 정책이 백지화되거나, 발표된 정책마다 교육계 갈등이 커지는 혼란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MB 시대 내내 경쟁교육을 진두지휘했던 이주호 장관이 다시 복귀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교육을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수단 정도로 격하시키는 교육철학을 보여주었다. 이에 윤 정부의 지난 1년간의 교육정책을 되짚어보는 과정은 정책의 난맥상을 해부하는 과정과도 같고,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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