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마약수사가 마뜩잖은 이들에게

지호일 2023. 5. 1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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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안에 인민들이 아편연(아편을 넣어 만든 담배)을 먹고 죽는 폐가 많은 고로 이것을 금지코자 하여 경시청에서 청국 영사와 교섭하여 한청 양국 인민은 물론이고 아편연을 먹는 자가 있으면 양국 순사가 서로 탐지하여 잡기로 작정하였더라."

조선정부는 특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데다 이미 아편이 만연했던 '청국 루트' 차단에 부심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고려시대에 편찬된 의서에 대마 씨앗인 마자의 기록이 있고, 조선 세종실록엔 아편 재료가 되는 '앵속'이 약재로 재배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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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사회부장


“한성 안에 인민들이 아편연(아편을 넣어 만든 담배)을 먹고 죽는 폐가 많은 고로 이것을 금지코자 하여 경시청에서 청국 영사와 교섭하여 한청 양국 인민은 물론이고 아편연을 먹는 자가 있으면 양국 순사가 서로 탐지하여 잡기로 작정하였더라.”

1908년 6월 23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다. 구한말 시기에도 마약은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열강의 침략보다 아편의 폐해를 더 심각하게 인식해 아편 침투를 경계했을 정도라고 한다. 조선정부는 특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데다 이미 아편이 만연했던 ‘청국 루트’ 차단에 부심했다.

100년여가 지난 지금은 더 악전고투 중이다. 과거 아편 유입로였던 접경지역과 항구 같은 특정 지역에 대한 집중 단속으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다면, 인터넷이 물리적 장벽을 지운 현재는 온갖 마약류가 사방에서 범람해 들어오는 상황이다. 국지전에서 전면전 양상으로 바뀌었다고 할까.

많이들 알다시피 마약의 역사는 오래됐다. 우리나라만 해도 고려시대에 편찬된 의서에 대마 씨앗인 마자의 기록이 있고, 조선 세종실록엔 아편 재료가 되는 ‘앵속’이 약재로 재배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상업화 산업화 국제화를 거치면서, 즉 근대 사회의 탐욕과 결합되면서 마약은 공동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악으로 굳어졌다. 농가 텃밭을 벗어나 대량으로 정제·가공되면서부터 국가가 반드시 통제하고 근절시켜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 50년대까지는 아편을 비롯해 모르핀과 헤로인, 60년대는 메타돈 등 합성마약, 70년대는 대마초가 성행했다. 8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필로폰이 압도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다크웹을 비롯한 인터넷과 SNS가 마약의 주요 루트가 되고 각종 신종 마약류가 등장하면서 마약의 위협 정도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이제 마약은 봇물 터진 듯 10대 청소년들까지 파고드는 중이다. 성인 판매책까지 고용한 고교생 마약상, 서울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살포 등은 결코 돌발적 사건이라고 볼 수 없다.

지난해 잡힌 마약사범 1만8395명 중 19세 이하는 481명으로 전체의 2.6%를 차지했다. 5년 전인 2017년 119명의 4배가 넘는다. 국내 마약류 범죄 암수율(약 29배)을 감안하면 실제 마약을 하는 10대 규모는 1만3000명 이상이라는 추산도 가능하다. 여기에 ‘좀비마약’ ‘악마의 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이 미국 전역을 초토화하더니 스리슬쩍 한국으로도 마수를 뻗치고 있다.

상황이 이런 데도 여전히 마약 수사를 마뜩잖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전직 법무부 장관들조차 ‘검수원복’ 시행령에 따른 검찰의 마약 수사를 야당에 신고해 달라 하고(박범계 의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마약정치 그만하라”고 다그친다(추미애 전 의원). 이런 태도들의 이면에는 검찰이 마약 수사를 빌미로 또다시 영역 확장을 꾀하려 한다는 견제 심리와 불안감이 자리한다. 그렇다 해도 마약에 관한 한 지난 정부 인사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사회 곳곳에 마약이 차오르는 때에 오히려 검찰 손발을 묶어 이를 퍼내지도 구멍을 막지도 못하게 하지 않았나.

그간 여러 정부가 ‘○○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이런 유의 싸움에서 이긴 적은 없다. 이길 수도 없지만 끝나지도 않을 싸움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우리 아이들이 좀비처럼 길바닥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을 터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전면전은 마약 사범 엄중 처벌만이 아닌 중독의 굴레를 끊기 위한 재활 치료와 지속적 관리, 예방 교육 등이 함께 이뤄지는 전 사회적 총력전이 돼야 한다. 손도 못 쓸 지경이 되기 전에.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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