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한·미·일 삼각협력과 균형감각
현 정부는 문재인정부와 현격히 다른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1년 만에 한·미·일 삼각협력을 통해 동북아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틀을 시도하고 있다. 4·26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과 3·16 도쿄 한·일 정상회담이 그 기초를 닦았다. 지난 7∼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으로 한·일 셔틀외교도 12년 만에 복원됐다.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이나 대일외교는 성공하기 힘든 구상이었다. 북한은 외부의 정상적 대북 접근이나 교역은 “독이 든 당근”으로 취급한다. 북한 정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 간에는 코로나 사태 이전엔 연 3000억 달러의 교역, 주 900편의 직항노선, 연 1000만명 정도의 상호방문이 있었다. 남북 간에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단 한 편의 직항노선도 없고, 단 한 명의 정상적 방문도 없다. 북한 문제를 동족끼리 감성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현 정부는 비현실적 대북정책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워싱턴 선언’으로 북핵에 대해 한·미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남북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며 이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하지만 북핵 대비가 선결 과제다.
문재인정부의 대일정책도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었다. 일본은 2차 대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여러 국가를 침략하고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한국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피해자의 개인 보상을 사법부가 결정하고 행정부가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사법 제한’을 유지했다. 즉 국가 간 외교적 결정 사항에 사법부가 관여하는 행위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일본에 개인 보상을 요구했고, 일본으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현 정부는 개인 보상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해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로써 한·일 관계가 정상화됐다. 미래를 위한 올바른 길이다. 물론 한·일 간에는 과거사 문제가 남아 있을 것이다. 일본이 독일과는 달리 과거사를 직시해 처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계속될 때마다 우리는 정확히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한·일 관계가 과거사 문제의 인질로 잡혀 있게 해서는 안 된다. 한·일 간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살려가야 한다.
한·미·일 삼각협력은 우선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 성공 여부는 경제에 달려 있다. 한·미·일 협력은 중요하지만 우리 국익 차원에서 한·중 경제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한·미 협력에서 우리는 가치동맹, 대만 문제 등을 포함시켰다.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는 처음으로 미국 일본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결 구도가 자리를 잡게 된다. 결국 우리 정부의 외교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신냉전체제’ 구축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신냉전체제는 적실성을 결여한 것이다. 21세기의 국제적 패러다임은 경제 중심 체제다(역사적 이유 때문에 전쟁의 패러다임을 따르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극히 예외적이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디커플링 정책은 안보가 아니라 경제 중심이다. 미·중 간 반도체 전쟁 등에도 불구하고 작년 미·중 간 교역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 미·소 간 냉전체제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중국이 세계 120여개국에 대해 최대 교역국이다. 미국은 한참 뒤진다. 미국의 전면적 대중 봉쇄정책은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미국이 쓸 수 없는 정책이다.
우리의 대중 교역 구조는 미국이나 일본의 대중 교역 구조와 전혀 다르다. 여기에 중국을 대할 때 미국이나 일본과 차별되는 우리의 국익이 있다. 또 궁극적으로 북핵을 포함해 북한 문제 해결에서도 중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를 고려하면 한·미·일 삼각협력에서 중국에 대해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을 안목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안목이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균형감각(sense of proportion)’이다. 장기적으로 한·미·일 삼각협력의 성공 여부는 한·중 교역을 희생하느냐 또는 지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만드는 데 우리가 앞장서선 안 되고, 남이 추구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서도 안 된다. 우리 외교는 과거 어느 때보다 외교적 균형감각을 행사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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