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18) 무능한 의사의 섣부른 시한부 선고에 암담했던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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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 정아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전세로 살던 집에 퇴근했더니 아내가 울고 있었다.
정기 검진차 병원에 갔는데 아이가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니 슬슬 정을 떼라고 의사가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형선고를 내린 그 의사는 소리가 큰 것으로 보아서 병이 심각하다고 했는데 중학생 수준의 물리학 지식도 갖추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무능한 의사의 방정맞은 사형선고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유 없이 3년간 지옥에서 헤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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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둘째 아이
용하다는 의사, 병원 찾아다녔지만
심장수술 불가능했던 국내 실정에…
둘째 아이 정아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전세로 살던 집에 퇴근했더니 아내가 울고 있었다. 정기 검진차 병원에 갔는데 아이가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니 슬슬 정을 떼라고 의사가 말했다는 것이다. 심장에 큰 소리가 나는데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 일생에 가장 암담하고 불행했던 3년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죽을 아이를 업고 용하다는 의사, 병원은 다 찾아다녔다. 부산에도 가고 전주에도 갔다. 그러나 어느 의사도 그게 어떤 병인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S병원에 갔더니 간호사는 애가 운다고 뺨을 때렸다. 진단한 의사는 어떤 설명도, 처방도 내리지 않고 아주 근엄하고 낮은 목소리고 딱 한 마디 했다. “다음에 오세요.”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심장 수술에 필수적인 심폐기가 한 대도 없어서 심장수술이 불가능했다. 미국의 한 자선단체가 가난한 나라 어린이 심장 수술을 돕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대리인을 찾아갔더니 아버지가 교수라는 이유로 수혜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석 달이 지난 후에도 아이는 병든 아이 같지 않게 잘 자랐다. 감사했지만 사형선고는 해제되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지난 후 어느 날 세브란스 병원에 한 젊은 심장 전문가가 미국에 유학하고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찾아갔다. 정말 오랜만에 의사다운 의사를 만났다. 아이의 병은 심실결격증이란 것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림을 그려가면서 상세히 설명해 줬다. 그리고 소리가 높은 것으로 보아 구멍이 크지 않으므로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러고 보니 사형선고를 내린 그 의사는 소리가 큰 것으로 보아서 병이 심각하다고 했는데 중학생 수준의 물리학 지식도 갖추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그러다가 1979년 네덜란드 순수학문지원재단의 학술 연구비를 받아 가족과 함께 1년간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레이든 대학 의대 부속병원은 유럽에서도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고 심장 전문 교수도 유명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정아가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수술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무능한 의사의 방정맞은 사형선고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유 없이 3년간 지옥에서 헤맨 것이다.
그 후 딸아이는 이화여대 입학 때 받은 신체검사에서 그래도 수술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사의 권유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잘 활동하고 있다. 비록 불필요한 고통이었으나 사람의 고통을 좀 더 잘 이해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모든 고난은 지나간 뒤에 감사 거리가 된다는 것을 아주 생생하게 체험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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