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알래스카 원주민과의 화해

2023. 5. 1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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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봄이다! 한동안 길거리와 카카오 내비에까지 연분홍빛 벚꽃잎이 흩날렸다가, 이제 도로 가장자리마다, 학교 캠퍼스 로터리 중앙에 진분홍과 붉은빛을 띠는 진달래가 피었다. 미국에서는 학년이 끝났다. 한국은 이제 중간고사가 막 끝나, 빛이 부족한 어두운 교실에서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배운다. 교실이 어두운 이유는 창문이 부족하거나 신화 속 까마귀가 해를 훔쳐가서가 아니라, 창문을 열어 책상으로 꽃잎을 날아들게 하면 빔프로젝터로 제공되는 디지털 수업 자료가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미 해군 출신의 할아버지 부부
알래스카 원주민에 군복 전달
원주민의 땅 침략한 미국인들
억압·강탈의 역사에 책임 느껴

지난달 중순 알래스카 주도인 주노에서 현지 원주민의 신앙을 보여주는 토템 폴을 세우는 모습. 큰까마귀, 고래, 독수리, 늑대 등을 새겼다. [사진 Brian Wallace]

내 고향 알래스카에서 하루 일광(日光)은 12시간을 훨씬 넘긴다. 다음 달 이맘때면 구름이 잔뜩 낀 밤조차도 거의 대낮처럼 밝을 것이다. 올봄은 매우 흥미진진한 시간이다. 내 고향 원주민 부족인 틀링깃족·하이다족·침시아족 출신의 많은 조각가가 지역 해안에 설치할 30개의 토템폴(totem pole)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1주일 전, 부족 의상을 정식으로 갖춰 입은 원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첫 토템폴 12개가 의식에 헌정되었다.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된 여러 장의 사진을 훑어보던 중 다른 모자들과 확연히 다른 어떤 모자가 내 눈에 확 띄었다. 바로 미 해군 장교 모자였다. 나는 혹시 그것이 우리 할아버지가 쓰셨던 모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 세기의 전환기 무렵 카그왕탄족 4인이 미 해군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어머니가 어느 틀링깃 여성에게 추모 행사 때 입으라고 할아버지의 군복을 주었다는 말을 하신 기억이 난다. 2020년 로시타 카하니 월이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목숨에는 목숨으로 갚는 틀링깃족 법에 따라 부족 사람들이 미군 넷을 살해한 뒤, “카그왕탄족 여성들은 배에 올라 해군 군복과 모자를 발견했다. 그들은 군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카그왕탄 여성들은 그 군복과 모자를 자신들의 전리품이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흘러 이 여성들은 야누아샤(해군 여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대대로 군인을 배출한 집안 사람인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금빛 어깨 장식이 달린 해군 장교 군복을 야누아샤에게 양도했다는 것은 화해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우리 집안 군인 중 누구도 틀링깃족과의 접전이나 그들의 마을 폭격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사는 마을은 지난 세기 어느 시점에 부당하게 뺏은 땅이 아니라고 결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최근 틀링깃족·하이다족·침시아족 문화가 재건됨에 따라 비원주민 미국인은 그들의 문화를 억압하고 땅을 빼앗는 일에 자기 가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매일같이 묻게 된다. 그것은 수백 년 전이 아닌, 근대에 발생한 일이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 노르웨이계 우리 외할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104세 생일을 맞았을 것이다. 우리가 하와이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투투’라고 불렀던 할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태어나셨고, 진주만 해군 구축함 대령 출신의 할아버지와 결혼하셨다. 할아버지는 오키나와에서 줄곧 전투에 참여하는 동안 할머니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버지 쪽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근처 엘먼도프 공군 기지로 이주했다. 1940년대 말엽 친할아버지는 거기서 대령을 지냈다. 알래스카는 여전히 미국 영토였는데, 한국전쟁 발발 무렵 아버지네 가족은 미국 영토에서 살던 다른 군인 가족들과 함께 대피했다. 전쟁이 끝나고 가족들은 재회했다.

친할아버지는 미국의 일본 통치기에 결국 일본에서 근무하셨다. 후에 하와이로 건너가셨지만 일본으로 복귀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혈통을 따라 군인이 되어 육군 법무감(JAG) 장교로 복무하셨다. 아버지는 밀라이 대학살 사건 때 최연소 검찰관이었다. 어느 군복에나 사연이 있다.

최근 30개 토템폴 헌정과 함께 내 고향에서 일어나는 원주민들의 재건은 봄을 맞은 알래스카주 남동부 지역이라는, 한층 넓은 무대를 배경으로 발생하고 있다. 야생화들은 들판에 흐드러지고 가문비나무 잎은 밝은 녹색을 띤다. 지난 주말에 내가 온라인에서 본 푸르른 하늘 아래 ‘늘어선 토템들’의 의식에서 ‘춤추던’ 해군 모자는 알고 보니 할아버지 모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모자를 제외한 자기 아버지의 군복을 야누아샤 친구와 그녀의 동족에게 양도한 것은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겪은 일에 대해 우리 가족이 인지하고 있음을, 또 비원주민 정착자인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상징했다.

한 세기 동안 알래스카주 우리 고향에서 문화적 억압과 영토 강탈을 자행한 자들은, 그 일에 직접 참여했든 단순히 조상의 행위로 이익을 누렸든 간에, 이번 봄에 창문을 열고 우리 역사를 환히 비추는 빛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의 책임을 재건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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