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인내의 역설

2023. 5. 1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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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Mind Miner

오랫동안 알아온 분이 얼마 전 모임에서 저와의 만남을 공유한 문장이 잊히지 않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데이터로 사람들의 마음을 캔다는 독특한 설명으로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10년이 지나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에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신중한 그분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무언가 꾸준히 지속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나 봅니다.

「 인내를 부단히 연습해온 청춘
사회 나오면 이른 퇴직과 직면
시간 축적의 가치가 소중해
기다림을 응원하는 사회 기대해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살아보면 꽤 긴 시간 동안 지켜보다 더 깊은 인연을 맺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뭐든 처음 시작하면 서툴러 그런 것도 있겠습니다. 그것보다 상대가 진심으로 그 일을 사랑하고 있는지 가만히 기다려 보는 것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교류의 안전판이라는 진리를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토록 중요한 것이 지속성이라면 우리는 견디는 분야에서는 이골이 나 있습니다. 인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혹독히 배웠기 때문이죠. ‘열심히’라는 단어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매일같이 듣는 부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인내는 묵묵히 종이를 까맣게 채우는 일에서 배웠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매일 몇 쪽의 빈 종이를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가득 채워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과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와 수학 공식을 몇백 번이나 반복해서 써넣다 보면 의미 없는 일을 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무념무심의 경지를 배우게 됩니다. 손목 근육이 늘어나는 것은 덤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정규 수업이 끝나더라도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스스로 공부하는 ‘자율 학습’이 타율로 강제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자아이고 누가 타아인가 심오하게 고민하며 언어의 기표와 기의의 관습적 불일치를 배웠습니다.

그 과정을 온전히 견뎌도 “공부 잘하니?”라는 질문에 긍정적 답을 해도 “몇 등인데?” 하고 되묻는 무한 경쟁사회를 겪었습니다. 입시는 열심히 준비한 수험생들이 문제를 다 맞혀서 등수를 낼 수 없을까 봐 변별력을 위해 난이도 극상의 문제를 추가했습니다. 그마저 혹시 틀리지 않을까 문제는 더 길게, 더 많이, 그리고 푸는 시간은 더 짧게 주었습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틀림없이 푸는 기계적 훈련을 통과한 자들이 진학의 열매를 딸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참고 참는 인내의 기예를 가르쳐 주었지만 학업을 마치고 나오면 한 가지 일을 좀체 지속할 수 없는 사회가 기다립니다.

최근 한 은행에서 희망퇴직 기준을 만 40세로 정했다는 기사에 서늘함을 느낍니다. 예전 학교를 마치고 20살에 입사하던 때 55세 희망퇴직도 걱정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은 듯한데, 이제 서른 가까운 나이에 들어온 사람이 10년 남짓 만에 퇴직을 종용받는 사회입니다. 이처럼 늘어진 수명에도 직업의 안정성은 도리어 줄어들고 있습니다.

매년 열리는 프랜차이즈 박람회에는 직장을 다니다 창업의 선택지로 내몰린 사람들이 요즘 유행한다는 업태를 찾느라 분주합니다. 플랫폼과 자동화로 인해 상권의 변화도 하루가 달라, 동네 가게들은 하루 걸러 문을 닫고 새 간판이 붙습니다.

이렇듯 경쟁이 포화상태에 이르며 생존의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와 책들이 인기를 얻습니다. 늘어난 인건비와 관리비에 지쳐 테이블에서 손님이 주문한 후 로봇이 조리하고 서빙하는 매장이 각광받는다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원가를 절감하더라도 다시 월세를 올려줘야 하니 좀체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게시판에 쌓입니다. 한숨을 쉬다 보니 예전 미국에 갔을 때 인구가 몇만도 되지 않는 동네의 아침밥을 파는 식당에 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개업한 지 70년이 넘었다며 지역신문에 소개된 투박한 기사가 식당 입구에 자리 잡았고, 할아버지와 함께 온 어린 손주의 대화는 무척이나 정겨웠습니다. 선반 높은 곳에 자리한 이태 전 세상을 떠난 창업자의 사진은 그 동리 사람들의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로 좋은 물건이 흔하게 되며 오히려 우리는 세칭 명품이 가지고 있는 ‘신스(since)’라는 단어에 더욱 매료되고 있습니다. 우직하게 오랫동안 풍상을 견디며 자신의 업을 만들어온 그들의 태도와 관록에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 브랜드들을 선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속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어렵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렇듯 빨리 바뀌는 사회라면 인내를 가르쳐주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무척이나 빨리 바뀔 터니 인내로 고통을 감수하라 알려준 것일는지도 모릅니다. 참을성을 그토록 가르친 사람들에게 그간 우리 사회는 그들이 오래 지속할 수 없도록 박하게 몰아세운 듯합니다. 개인의 열망과 헌신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것보다 이제는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사회의 인내를 기대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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