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음식과 약] 물 마신다고 술이 깰까

2023. 5. 1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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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술 마신 뒤에 물을 마셔도 소용없다. 물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술이 더 빨리 깨지 않는다. 숙취 증상을 조금 줄이는 효과는 있다. 알코올은 이뇨제처럼 작용해서 탈수 증상을 일으킨다. 술을 마시고 나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 이유다. 술 마신 다음 날 얼굴이 땅기는 느낌이 드는 것도 탈수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물은 인체가 섭취한 알코올을 제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알코올은 간에서 대사된다. 물은 간이 알코올을 해독하는 일을 도와줄 수 없다. 약 먹을 때 물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몸에서 약이 더 빨리 빠져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물을 마시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약의 농도가 희석될 수는 있다. 일부 항생제, 항암제를 복용할 때 하루 4~6잔 이상 물을 마시라고 권고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소변 중에 약의 농도를 묽게 해서 약이 결정을 만드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도예가 한애규의 ‘갈증’. 물을 많이 마신다고 술이 빨리 깨진 않는다. 술은 언제나 적당히 마시는 게 좋다. [중앙포토]

과거에는 운동선수들이 약물 남용 뒤에 이뇨제를 복용하거나 물을 많이 마셔서 도핑 테스트를 피하려고 시도하는 사례도 있었다. 요즘엔 분석 기술이 좋아져서 그렇게 해도 검사에 다 걸린다. 게다가 알코올처럼 간에서 대사되는 약물은 물을 마셔도 체내에서 제거되는 데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술을 마시는 중간에 물을 마시면 덜 취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물이나 비알콜 음료를 마시면 술 마시는 양이 조금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술을 마시려는 욕구가 줄어드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 2017년 독일 연구팀은 23명의 알코올 의존증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한쪽에는 미네랄워터 1000㎖를 마시도록 하고 다른 쪽은 물을 마시지 않도록 하여 호르몬 수치를 비교했다. 그 결과, 물을 마신 참가자들은 음주 욕구와 관련한 호르몬 수치가 줄어들고 실제로 음주에 대한 갈망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을 마시면서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게 조금 적게 마실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술 한 잔을 마시면 물 한 잔을 마시는 전략은 술을 적게 마시는 방법으로는 나쁘지 않다.

술 마신 뒤에 빨리 깨는 방법은 없다. 커피나 카페인 음료를 마시면 술이 깨는 거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카페인은 알코올 자체의 해독에 전혀 효과가 없다. 2020년 캐나다에서 호흡을 항진시키면 알코올이 더 빠르게 제거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소규모 연구로 알아내긴 했다. 하지만 이것도 과호흡을 유도하는 기기를 사용했을 때 이야기다. 일상에서 음주 뒤에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니 선택은 단 하나다. 간이 알코올을 전부 제거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몸은 정직하며 융통성이 없다. 뒷일이 걱정된다면 술을 안 마시거나 적게 마시는 수밖에 없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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