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과학 산책] 행복의 정복
학창시절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을 『행복의 정복』이란 베스트셀러의 저자로만 알고 있다가 대학에 와서야 이분이 본래 뛰어난 수학자였음을 알게 됐다. 그는 98년 긴 생애의 3분의 1을 수학자로, 다시 3분의 1을 철학자로, 나머지 3분의 1은 평화운동가로 각각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19세기 말 무한과 집합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고 사용하다가 여러 가지 모순들이 발견됐다. 청년 러셀은 모순이 없는 수학을 위해, 모든 수학적 논증을 최소단위로 분석하고 엄밀한 논리적 구조 위에 수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의 명저 『수학원리』는 수학기초론에 크게 기여했고, 영예로운 드모르간상과 실베스터상을 받았다. 중년이 돼 수학자로서 너무 어려운 문제들에 몰두하다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다고 느꼈을 때 철학 연구를 시작했다. 평이하고도 명확한 논리로 어려운 철학적 주제들을 설명해 20세기 중요한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행복의 정복』, 『게으름 찬양』 등과 같은 대중 철학서도 다수 집필했다. 위트가 넘치고 따뜻한 시선이 가득한 글들의 문학성을 인정받아 195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노년에는 평화운동가로서 영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해 싸웠고 인도의 독립에 기여했다. 인도에서는 그에게 감사하며 기념 우표까지 제작하였다. 그야말로 인생 3모작을 성공적으로 일군 셈이다.
힌두교에서는 인생 4모작을 말한다. 성년이 될 때까지 뛰어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는 성장기, 성년이 되어 가족을 이끌고 부양하는 가장기, 자식이 성장하면 가장의 책무를 넘기고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숲속 생활기, 평화로운 죽음을 준비하는 출가기의 4단계가 바람직한 인생의 사이클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백세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인생 다모작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선량한 의지로 행복을 정복한 러셀의 지혜와 삶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집 100m앞 골목길서 아빠 차에 치인 6살 아들…결국 숨졌다 | 중앙일보
- 간세포암 치료 물질 찾았다, 30일 만에 일어난 ‘AI 혁명’ | 중앙일보
- 자녀 5명인데 내연녀 자식 키우라는 남편, 폭력까지 휘둘렀다 | 중앙일보
- 동생 죽인 매부 재판, 유족엔 알리지도 않았다…팔짱낀 법원 [두번째 고통②] | 중앙일보
- 택시비 포항→대전 28만원 먹튀…두 여성이 기사에게 쓴 수법 | 중앙일보
- '소주한잔'도 안 판다…세븐일레븐, 결국 임창정 손절 수순 | 중앙일보
- "지금 사법부는 중병 걸렸다" 법관대표회의 의장 쓴소리 [박성우의 사이드바] | 중앙일보
- [단독]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용어 변경 검토 착수 | 중앙일보
- [단독] '北어선 무덤' 수십척…죽음의 조업 내몬 김정은 민낯 | 중앙일보
- 커피 뿌린 흡연남들, 자영업자였다…"손에 걸려서" 결국 사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