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머리만 고군분투, 테니스 빅4 시대 석양길
남자 테니스 ‘빅4’의 시대는 이대로 저무는가.
올해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클레이코트 시즌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2004년 이후 세계 테니스계를 호령하던 라파엘 나달(37·세계랭킹 14위·스페인), 노박 조코비치(36·1위·세르비아), 로저 페더러(42·은퇴·스위스), 앤디 머리(36·42위·영국) 등이 시상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클레이코트 시즌은 4월부터 5월 말 프랑스오픈까지 약 2개월이다. 이 기간 열리는 대회는 주로 클레이코트에서 치러져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테니스 ‘4대 천왕’은 지난 20년간 테니스 GOAT(Greatest Of All Time, 역대 최고 선수) 자리를 놓고 경쟁해왔다. 이들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열린 메이저 대회 76회 중 66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번갈아 가면서 들어 올렸다. 나달과 조코비치가 22회로 역대 메이저 단식 최다 우승 공동 1위, 페더러는 20회로 2위다. 머리는 3회로 가장 적지만, 준우승이 8차례나 된다. 견고했던 ‘4인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부터다. 맏형 격인 ‘황제’ 페더러가 은퇴하면서 4대 천왕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그는 2021년 7월부터 무릎 부상 탓에 1년 넘게 공식 경기에 뛰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달은 부상으로 쓰러졌다. 고질적인 왼발바닥 통증이 심해진 탓에 지난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나달은 19세 때부터 뮐러-와이즈 병을 앓고 있다. 관절이 변형되며 신경을 짓누르는 희소병이다. 그동안 진통제로 버텼다. 나달은 재활 후 올해 1월 호주오픈에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했지만, 2회전에서 탈락했다. 이후 그는 왼쪽 다리 고관절 부상까지 겹쳐 대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국 BBC는 “나달의 프랑스오픈 출전도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오는 28일 개막하는 프랑스오픈에선 나달이 최다 우승 기록(14승)을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별명도 ‘흙신’이다.
그나마 조코비치는 꾸준한 편이었다. 지난해 7월 윔블던 정상에 오르며 “여전히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아 지난해 US오픈엔 출전 못 했지만, 올 1월 애들레이드 1차 대회와 호주오픈을 석권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슬럼프에 빠졌다. 호주오픈 이후 세 차례 대회에서 모두 일찌감치 탈락했다. 특히 지난달 13일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16강에서는 21세의 신예 로렌초 무세티(21위·이탈리아)에 졌고, 같은 달 21일 스르프스카 오픈 8강에선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두산 라요비치(70위·세르비아)에게도 패배해 충격을 줬다. 조코비치는 과거 수술을 받았던 오른쪽 팔꿈치에 다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빅4의 시대가 저무는 가운데 머리의 분투가 눈에 띈다. 36세의 머리는 지난 7일 엑상프로방스 챌린저에서 우승했다. ATP 투어 중 낮은 등급의 대회지만, 머리에겐 의미가 남다르다. 그가 ATP 대회에서 우승한 건 2019년 10월 알트베르펜 오픈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그는 허리와 고관절 부상으로 2019년 은퇴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머리는 고관절에 금속 재질의 인공관절을 이식하는 수술까지 받으면서도 라켓을 놓지 않고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
올해 호주오픈 2회전에선 머리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잘 드러났다. 서나시 코키나키스(104위·호주)를 상대로 1, 2세트를 내준 그는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 3-2로 승부를 뒤집었다. 호주오픈 역대 최장 시간에 8분 모자란 5시간45분의 혈투. 현지시간 새벽 4시가 넘어 끝난 1박2일의 역전 드라마였다. 이제 그는 밤을 새워 승부를 펼쳤다 해서 ‘올나잇 머리’로 불린다. 체력이 약한 선수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머리는 “우승을 계기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집 100m앞 골목길서 아빠 차에 치인 6살 아들…결국 숨졌다 | 중앙일보
- 간세포암 치료 물질 찾았다, 30일 만에 일어난 ‘AI 혁명’ | 중앙일보
- 자녀 5명인데 내연녀 자식 키우라는 남편, 폭력까지 휘둘렀다 | 중앙일보
- 동생 죽인 매부 재판, 유족엔 알리지도 않았다…팔짱낀 법원 [두번째 고통②] | 중앙일보
- 택시비 포항→대전 28만원 먹튀…두 여성이 기사에게 쓴 수법 | 중앙일보
- '소주한잔'도 안 판다…세븐일레븐, 결국 임창정 손절 수순 | 중앙일보
- "지금 사법부는 중병 걸렸다" 법관대표회의 의장 쓴소리 [박성우의 사이드바] | 중앙일보
- [단독]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용어 변경 검토 착수 | 중앙일보
- [단독] '北어선 무덤' 수십척…죽음의 조업 내몬 김정은 민낯 | 중앙일보
- 커피 뿌린 흡연남들, 자영업자였다…"손에 걸려서" 결국 사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