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확신한다” 황인철의 민청학련 변론, 기림비에 새겨지다
“나는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한다. 그러나 그에게 유죄 판결이 떨어지리라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변호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토로될 지경에 이르면, 도대체 이 재판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故) 황인철 변호사(1940~1993·사진)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변론하던 중 이런 말을 남겼다. 박정희 정권이 독재 반대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을 공산주의 세력으로 몰아 180명을 구속하고 일부에 사형 또는 징역형을 내린 사건이었다. 고인은 그렇게 34살의 젊은 나이에 인권 변호사의 길에 뛰어들었다. 죄가 없는 피고인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이 확실하다며 세상을 향해 울부짖은 그의 목소리는 고향 대전의 기림비에 새겨졌다.
1세대 인권변호사이자 문학과지성 창간 멤버인 황인철 변호사의 30주기를 맞아 10일 그의 생가가 있는 대전시 유성구 세동에 기림비가 세워졌다. 이날 오전에 열린 기림비 제막식에는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초대 대표, 김영희 한겨레신문 편집인,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 유인태 전 국회의원, 장영달 민청학련 동지회 상임이사, 함세웅 신부를 비롯해 유가족과 인근 주민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문학과지성사는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발하는 서적들과 참다운 삶의 형상을 그리는 문학 작품들을 지속해서 발간하는 일을 목표로 시작한 문학과지성사가 창사 50주년을 2년 앞두고 그 뜻의 시작에 함께한 황인철 변호사의 이번 기림비 제막식을 준비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고인의 오랜 친구인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초대 대표(문학평론가)는 이날 제막식에서 “한 세대가 지났음에도 그가 남긴 공은 오히려 더 깊이 있게 우리를 감싸고 있으며 그의 생각과 말은 앞날을 향해 살아 움직이며 맑은 눈, 바른 몸, 밝은 정신으로 터지고 있다”며 “그가 바라는 세상이 넓고 힘 있게 번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인과 함께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멤버로 활동한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은 “성정이 곧고 인품이 고매했던 선배”로 고인을 기억했다. 이어 “인권변호사라는 말조차 없던 1970년에 그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 분”이라고 말했다.
아들 황준하씨는 “기림비가 세워진 바로 이 자리가 아버지의 생가였던 초가집 자리”라며 “아버지는 앞에 나서서 이름 세우는 일을 마뜩잖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기림비 제막식을 준비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많은 분이 따뜻한 말씀으로 도와주셨다. 아버지도 기뻐하실 것 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 황 변호사는 군부 정권 하에서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창간(1970)하고 문학과지성사 창사(1975)에도 힘을 보탰다,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직장암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보도지침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각종 시국 사건의 변론에 앞장섰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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