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내는 안녕하십니까?[유경희의 ‘그림으로 보는 유혹의 기술’]

2023. 5. 1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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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에 Hot한 신예 작가 떠오른 ‘로즈 와일리’

요즘 부쩍 당신의 아내가 짜증이 늘었는가? 그렇다면 부인도 사모님 우울증?

수년 전 어떤 정신과 의사가 쓴 ‘사모님 우울증’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무엇보다 제목에 끌렸는데, 그림 처방이라는 아주 참신한 테라피였다는 점을 빼면 안타깝게도 나의 호기심을 충족할 만한 내담 사례는 없었다.

➊ 70대에 거미 조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쥔 루이즈 부르주아.
우리나라에서만 보인다는 특유의 ‘사모님 우울증’이란 무엇일까?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반만 맞는 얘기인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모님 우울증이라는 질병의 이유와 배경이 어쩌면 그렇게 비슷비슷할까 싶을 정도로 유사하다. 일단 이 진단을 받은 중년 여성은 대략 좋은 학벌 혹은 썩 괜찮은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다. 비교적 성공적인 남편을 뒀으며, 교육에 헌신한 만큼 아이들이 잘됐고, 이제 아이들이 독립(혹은 결혼)을 했거나 앞두고 있으며, 남편과는 대화 불가능이지만 이혼을 고려할 만큼 싫은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는 평균 이상으로 풍요롭다. 그런데 이런 중년 여성들이 정신과를 찾아와 호소한다. 화가 나고,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으며, 무기력하다고! 대부분 과거에 얽매여 있는 그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무척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자신과 동일시했던 삶이, 자기 삶을 보류한 채 자식과 남편을 통해 보상받으려 했던 대리인생이 끝나버렸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배신감과 공허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대중 강좌로 돌아선 후 나는 남성보다 여성이 얼마나 스스로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지를 절실하게 봤다. 한 예로, 아카데미 강좌를 7년쯤 듣던 한 중년 여성은 “미술사 강의를 7년쯤 들으니까 이제야 정말 너무 재미있네요. 저는 제 가족에게는 미술관 도슨트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예술과 인문학 공부를 통해 남편과 아이는 물론 저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이해하는 폭이 엄청 넓어지고 깊어졌어요.” 이는 사모님 우울증을 인문학과 예술 공부를 통해 극복한 케이스다. 많은 중년 여성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것저것 시도해보지만, 정작 좋아하는 단계까지 이르기도 전에 그만둔다. 사실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기 위해서는 소위 수련 기간(discipline)이 필요하다. 어느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통과해야 하는 것. 그래야 진실로 잘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 나이에 뭘”…60 이후 인생의 황금기 보낸 ‘조지아 오키프’

70세에 ‘마망’이라는 거대한 거미 구조물로 명성 거머쥔 ‘루이즈 부르주아’

미국 현대 미술의 대표적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년)는 60세 이후에 뉴멕시코로 이주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그때가 바로 자신보다 23살 연상 유명 사진가이자 화상이었던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82세의 나이로 사망한 시점이었다. 그녀는 신경증과 유방암 그리고 남편의 불륜으로 인한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환난을 겪었다. 그러고 얻은 60대 이후 40년간의 삶은 가장 오키프다운 활기로 가득 찬 열정적 삶이었다. 그녀는 여행을 자주 다녔고,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콜로라도에서 래프팅과 캠핑을 즐겼다. 뉴멕시코 오지까지 사진 기자들이 몰려올 만큼 포토제닉한 얼굴과 패션 그리고 멋진 인테리어를 가진 집에서 살았다. 게다가 오키프는 남편이 살아 있던 60세 이전보다 더한 인기를 구가했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 회고전은 전대미문의 명성을 가져다줬다. 여든이 넘었을 때다. 그녀의 삶과 작품에 영감을 받아 조언을 바라는 화가들로부터 편지가 넘쳐났다. 그러나 그녀의 조언은 간단했다.

“집으로 들어가서 그리세요. 그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당신이나 나나 그런 식으로 남을 도울 수 없어요. 나에게 최고의 시간들은 바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가족에게서 각별히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었고,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 생각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아, 만약 내가 사람들 조언을 따랐더라면, 나는 가망이 없었을 겁니다.”

70세라는 나이에 ‘마망(Maman)’이라는 거대한 거미 구조물로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쥔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년)는 또 어떤가! 파리에서 태어나 조각을 전공했고, 1938년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했던 그녀는 아들 셋(입양한 아들까지)을 키우면서 마흔 즈음에 조각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80세부터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이불보, 속옷, 잠옷 등의 헝겊으로 바느질해 특유의 부드러운 조각을 탄생시켰다. 90세 무렵에는 생명력 넘치는 붉은 드로잉으로 또 한 번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➋ 영국 화가 로즈 와일리는 76세에 영국에서 가장 핫한 신예 작가로 떠올라 89세가 된 현재까지 세계 미술계에 러브콜을 받는 작가가 됐다. ➌ 60대부터 뉴멕시코 사막에서 인생의 만년의 열정을 불사른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 1960년.
멕시코의 국민 화가 프리다 칼로가 본격적으로 예술가라는 경지에 도달했던 것도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이혼과 재결합 이후에 이뤄졌다. 결혼 초반기 프리다는 거물급 화가였던 디에고의 살림 잘하고 주변을 잘 챙기는 아내이자 정치적 파트너로서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림을 그렸지만 그저 일기와도 같은 정도의 수준으로만 치부했고, 그래서 예술가라는 인식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술의 세계로 더욱 몰입하게 만든 건 남편의 불륜이었다. 주변 여자들은 물론 심지어 여동생과의 외도는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변할 사랑이라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어쨌거나 프리다는 궁극적으로 남편을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 혹은 제3의 혜안을 가진 신으로 묘사하는 등 상처와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미술사에 삶과 예술이 이다지도 일치된 작가는 보기 힘들 정도다.

영국 작가 로즈 와일리(1934년~)는 “이 나이에 뭘” 하는 분들에게 드라마틱한 처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로즈 와일리는 그저 평범한 주부에서 현대 미술계의 가장 핫한 작가가 됐다. 로즈는 미술대학을 다녔지만 21세의 나이에 결혼을 하며 화가의 꿈을 중단했다. 1979년 45세 나이에 영국왕립예술학교에 입학하며 다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됐지만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고 오랜 무명 생활을 견뎌야 했다. 매일매일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마침내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2013년 영국 테이트 브리튼 뮤지엄과 서펜타인 갤러리에서의 전시 덕분에 76세 나이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영국에서 가장 핫한 신예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어 유명 화랑의 전속 작가가 됐고, 여전히 전 세계 컬렉터의 러브콜을 받으며 아트계 거장이라 불리고 있다. 사모님 우울증에 걸리신 분들에게 모두 예술가가 되라고 권유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라도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자기 구미에 맞게 만들어나가길 권한다. 삶의 예술 되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겠는가? 인생은 나를 ‘찾는’ 여정이 아니다. 나를 ‘만들어’나가는 지난한, 그렇지만 흥미로운 과정일지도….

유경희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8호 (2023.05.10~2023.05.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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