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심각한 아세안 수출 급감 [임상균 칼럼]
그동안 반도체 업황 악화와 대중국 수출 부진을 한국 수출의 대표적 문제로 꼽아왔다.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고, 중국은 경제 활동 재개가 늦어졌기 때문에 둘 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올 들어 새로운 구멍이 생겼다. 대아세안 수출이 심각하다. 아세안은 우리에게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다. 성장성과 잠재력으로 따지면 가장 유망하다. 그런데 작년 10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7개월 연속 감소세다. 작년 10월 5.7% 줄더니 14.2%(11월) → 16.9%(12월) → 19.4%(1월) → 21.1%(3월)로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폭이 커졌고 급기야 4월 26.3%나 급감했다.
아세안 수출의 절반 가까이는 베트남향 수출이다. 4월 아세안 수출 규모가 83억달러인데, 베트남이 46%(38억달러)를 차지했다.
베트남은 국내 주력 기업의 완제품 공장이 위치해 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중간재를 수출한다. 4월 대아세안 수출을 품목별로 나누면 반도체가 39.7% 급감했고 석유화학(-43.4%), 이차전지(-35.1%), 철강(-16.1%) 등도 많이 줄었다.
동남아에서 우리가 생산해 세계 시장에 파는 완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삼성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유화, 철강 등의 중간재가 들어가는 완제품 역시 타격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도 대아세안 수출은 다소 위축됐다. 작년 11월까지 매월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으나 12월 4.1%로 뚝 떨어지더니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이다. 하지만 감소폭은 4%(1월) → 1.3%(2월) → 1.1%(3월 속보치) 등으로 미미하다. 한국과 천양지차다.
일본 역시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현지 생산 공장을 무수히 세웠다. 태국은 토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의 주력 생산 기지다. 일본의 완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일본은 이미 아세안 내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3월 일본의 대아세안 수출은 4조7000억엔에 가깝다. 전체 수출 8조8243억엔의 53.2%에 달하는 최대 수출 시장이다. 미국(1조6775억엔), 중국(1조5516억엔)보다도 3배나 많다. 생산 기지를 향한 중간재 수출만으로는 이런 규모가 불가능하다.
아세안을 장악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결과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십수 년 전부터 ‘차이나+1’ 전략을 외쳐왔다. 중국에 의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정부에서 원조 자금을 투입하고 그 과실을 일본 기업들이 받아가는 협공 전략으로 차분히 아세안 시장을 확보했다.
그 결과 올 들어 글로벌 경기 침체가 완연하고 대중국 수출이 7.7% 감소했음에도 일본의 3월 수출은 4.3% 늘어나며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세안 시장을 중간재를 수출해 현지의 싼 노동력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세계에 수출하는 ‘생산 기지’ 정도로 여겼던 우리와 출발부터 달랐다.
대아세안 수출은 그래서 반도체나 대중 수출과 달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우리 수출의 회복을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8호 (2023.05.10~2023.05.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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