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대통령이 바꾼 글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박소희, 권우성 기자]
▲ 신동호 전 문재인 대통령 연설비서관. |
ⓒ 권우성 |
(* 지난 인터뷰 기사 <"지지자 아니면 상처 주는 윤 대통령의 말, 국민 아닌 국힘의 대통령"> 에서 이어집니다.)
"혁명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경장更張>)"던 시인은 "서촌을 헤매고 있는 이상(李箱), 이상(理想), 이상(異常)(<서촌, 인왕제색仁王霽色, 이상>)"으로 몇 년을 살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비서관 신동호'로.
날 선 정치의 언어와 둥근 문학의 언어가 만나는 시간은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신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마음을 특정 세력이 아닌 국민 전체를 향해 보내는 일이 제법 맞았다고 했다. 2016년 겨울 촛불을 든 개인과 개인의 삶이 대통령의 말과 글에 오롯이 묻어나도록 애쓰는 일 또한 고단하나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쓴 3000여 개의 글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내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신 전 비서관은 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가지도자는 '통합'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향했던 대상도 '모든 국민'이었다며 "그렇지 않게 연설문을 작성했는데도 (외부에서) 단어 하나를 갖고 갈라치기라고 하는 말들이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런 오해를 받더라도 대통령의 말은 '통합과 희망'이란 꿈을 놓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대통령의 말'을 담당했던 시절 아껴 뒀던 이야기들을 하나둘 꺼냈다.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지만... 시대가 정치-문학 연결"
- 시인과 정치인, 딱 봐도 낯선 조합인데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12년 대선 당시 메시지팀 일원으로 일했다. 대통령이 잘 봐주셨는지 2014년 전당대회 때 메시지팀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이후 당대표 메시지 부실장을 하고 청와대까지. 꼬박 50대의 8년을 문 전 대통령과 지냈다. 정치 메시지를 쓴다는 게 살아온 일과 잘 안 맞긴 했다. 여러 번 그만두고 싶었고. 그런데 대통령의 생각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정치권의 변화, 촛불혁명을 보면서 '내 역할이 있겠다' 생각했다.
▲ 신동호 전 문재인 대통령 연설비서관. |
ⓒ 권우성 |
- 청와대에 들어갈 때는 이미 시간이 좀 지났을 텐데, 그때엔 괜찮았나.
"엄청나게 고민했다. 오랫동안 남북관계 일을 했는데 좀 더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쪽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몇 사람하고 의논도 했는데 아무도 인정을 안 해주더라.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특정한 일을 맡는 것보다 연설비서관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고 하고. 그래서 빼도 박도 못하게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던가.
"훨씬 많더라. 다른 정부는 모르겠는데, 저는 대통령이 하는 모든 생각과 국정을 크고 작게 볼 수 있는 자리가 연설비서관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리다."
- 그만큼 문 전 대통령과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문재인의 말과 글'은 어떤 지론을 갖고 있었나.
"(A4 종이를 보여주며) 취임 1주년 SNS 메시지다. 도쿄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 전 대통령이 작성했다. 제가 거의 초안을 잡는데, 몇 안 되는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초안 중 하나다.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은 국민입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국민입니다. 단지 저는 국민과 함께하고 있을 뿐입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되게 짠했다. 이게 문 전 대통령이 갖고 있던 말과 글에 대한 지론이자 철학이다."
딸아들-아들딸 순서 고민한 문 전 대통령... "꼼꼼함 느껴"
- 문 전 대통령은 연설 도중 즉흥적으로 표현을 넣는 편인가, 아닌가.
▲ 2020년 6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 가장 술술 썼던 연설문, 가장 공들여서 썼던 연설문을 각각 꼽는다면.
"술술 써 내려간 적은 한 번도 없고, 힘들지 않았던 적도 한 번도 없다. 제일 공들여 쓴 연설문은 2020년 6.25 70주년 연설이다( https://omn.kr/1o1t3 ). 그해 1월부터 고민했다.
저는 이 연설이 정말 국민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국민 통합이 된다 생각했다. 6.25는 분단이 낳은 비극인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를 갈라놓은 남남갈등의 시작이다. 상처받은 분들은 위로받고, 젊은이들이 전쟁을 겪은 세대를 존중하게 만드는 연설을 쓰고 싶었다. 정말 많이 공부해서 작성했고, 문 전 대통령도, 저도 만족한 연설이었는데 우리 탁(현민) 비서관이 행사를 너무 근사하게 만들어서 연설이 완전히 묻혔다(웃음).
다다음날엔가 한 보수 언론의 베테랑 안보담당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라 안 받았더니 사무실로까지 전화했다. '전대협 출신이고 좌파 같은데 어떻게 그런 연설을 썼나. 본인이 쓴 게 맞나'라고 묻더라. '예, 제가 초안을 올렸다'고 했더니 당장 인터뷰를 하자고 했는데, '(비서관 일) 끝나면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끝나고 나니 연락이 없어서 보니까 은퇴했다. 그래도 이런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니까 나름 뿌듯했다."
- 문 전 대통령의 피드백 중에서 '이건 정말 내가 생각 못했던 부분'이라면서 놀랐던 기억은 없나.
"엄청나게 많아서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많은 공무원과 학자들이 '우리나라 자영업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나. 그런데 어느 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전 대통령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영업을 경제단위의 한 분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여러 사람이 그랬을 거다.
이 회의 후 자영업비서관이 신설됐다. 또 이정동 서울대 교수의 <축적의 길> 이런 책을 보면 '선도국가'란 개념이 있다. 그런데 경제 관련 연설문에 문 전 대통령이 (원래 없던) '선도국가'를 넣었다. 그때 '역시 이게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독서를 통해 나왔든 아니든, 국민들에게 '이제 우리는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가 되자'고 희망을 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 전 대통령의 꼼꼼함, 마음을 느낀 일도 있다. 대통령도, 저도 자식을 '아들딸'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아들딸'이라고 문구를 올렸는데 '딸아들'로 바뀌었다. 한참 젠더 문제가 있을 때. 이후 제가 버릇돼서 '딸아들'로 계속 썼는데 임기 말에 '이대남(20대 남자)' 이슈가 터졌더니 (문 전 대통령이 표현을) '아들딸'로 다 바꿨더라(웃음). 글 쓰는 사람처럼 예민하게 바꿨다기보다는, 시대의 흐름과 정서적으로 맞붙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딸아들'에선 살짝 웃었는데, 이때는 (웃음이) 폭발했다."
▲ 신동호 전 문재인 대통령 연설비서관. |
ⓒ 권우성 |
- 문 전 대통령 연설에는 많은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다. 재임 시절 메시지를 엮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보면 책의 1부를 "이름 없이 희생한 분들의 이름을 찾아드리고, 평가받지 못한 분들에게 명예를 돌려드리기 위해 노력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이라고 소개하는데.
"촛불과 관련 있다. 그야말로 헌법 1조,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그 정신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가. 사회는 그렇게 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정부에선 여전히 국민은 다스림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한번 보자. 문 전 대통령이 3.1절에 굉장히 꼼꼼하게 그 연설을 했는데, 민족대표 33인도 있지만 태극기를 들었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체포되고 죽었다. <상록수>를 쓴 심훈이 학생 때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돼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보면, (독립을 향한) 백성들의 열망이 느껴진다. 우리 선열들도 그걸 느꼈기 때문에 임시정부 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6.25도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가 아니라 '한 개인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또 5.18, 그야말로 공권력이 사라진 '빈'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서로를 돕고... 그런 것이야말로 한 개인이 얼마나 성숙하고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그게 제대로 드러난 게 촛불이다. 촛불을 든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게 변화하고 발전한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처음 개인을 호명한 게 2017년 5.18 기념사였다. '대통령 연설에 개인 이름을 넣으면 안 된다'며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저와 임종석 실장이 밀어붙였고, 문 전 대통령이 흔쾌히 오케이해서 그 연설이 나왔다. 이후 8.15 연설에선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호명했고, 국가조찬기도회 연설문에는 여성 선교사들을 넣었다. 개인을 호명하면 연설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 그들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그게 세상의 변화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이다. 우리는 이 분명한 철학 속에서 개인의 이름을 불렀다."
- 대통령기록관 웹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이전 대통령들의 연설문은 800건 안팎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1392건에 달한다. 연설도 많았지만, SNS메시지가 많았던 것도 한몫하는 듯하다.
"(앞의 이야기에) 연장해서 말씀드리면, 권위주의 정부에선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노고를) 치사했다. 촛불혁명 이후, 개인이 성장하고 성숙한 곳에선 반대가 된다. 위로가 필요한 데에는 위로를 해야 하고, 고맙다고 표현할 때는 고맙다고 표현해야 하니까 메시지가 많아졌다.
평창동계올림픽 직전에 정현 선수가 2018호주오픈 남자단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4강에 올라서 퇴근하다가 커피숍에서 축전을 썼다. (문재인 정부는) 일관된 철학이 있으니까, 그냥 축하한다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담아야 한다 생각했다. 그때 (메시지팀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올림픽의 의미가 크기도 하지만, 제가 당시 이상화 선수 인터뷰를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다.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포기했지만 본인은 너무 재밌고 좋아서 운동을 했다더라. 다른 선수들은 오죽했겠나.
그래서 축전을 일대일 맞춤형으로 썼다. 금메달만이 아니라 은메달, 동메달, 단체종목까지. 문 전 대통령도 좋아했지만, 선수들이 너무 좋아해줬다. 한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드린 축전이 된 거다.
선수들이 이걸 SNS에 올려서 하나하나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때 후배들이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라'고 해서 처음으로 모니터링이란 걸 해봤다. 열기가 엄청났다. 그 바람에 끝날 때까지... (웃음) 자카르타 아시안게임도 있지 않았나. 반농담이지만, '오늘은 메달 안 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고, 가장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코로나가 막 시작될 무렵 진도에서 어머니들이 봄동을 대구 코로나 환자들에게 보낸 일에 관한 메시지다. 재난이 닥쳤을 때 정부도 당연히 성실하게 노력해야 하지만, 국민들 스스로 돕고, 서로 응원하고 위로하는 모습에서 문 전 대통령이 느낀 바가 있어서 (메시지 작성을) 지시했던 것 같다. ('땅은 봄동을 키우고, 국민은 희망을 키워주셨습니다'라는 메시지는) 그런 국민들이 고맙다는 표현이었다."
▲ 신동호 전 문재인 대통령 연설비서관. |
ⓒ 권우성 |
- 2021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우리는 지난날의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새로운 꿈을 꿀 차례입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문재인 정부 시절 대한민국의 위상은 여러모로 달라졌다. 반면 여러 가지 아쉬움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가까이서 대통령의 생각을 엿본 사람으로서 가장 마음에 남은 '미완의 과제'는 무엇인가.
"결국 또 국민 통합이다. 개인에게도 꿈이 있지만, 나라에도 선도국가, 한반도 평화 등 여러 가지 꿈이 있다. 사람들이 그 나라의 꿈에 대해 열망과 희망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 국민 통합이 이뤄져야 하는데, 죽도록 노력했지만 잘 안 된 게 아쉽다."
- 가장 아팠던 비판도 이 대목인가.
"그럼요. 저는 그렇지 않게 연설문을 작성했는데도 불구하고 단어 하나를 갖고 갈라치기라고 하는 말들이 굉장히 마음 아팠다.
희망은 있다. 2017년 현충일 연설 이후 저희가 (대통령 지지율이) 80% 고공행진을 했다. 그날 저녁 국회의원 네 명으로부터 '지역행사를 갔는데 너무 분위기가 좋다'는 전화가 왔다. 현충일 연설은 6.25 참전용사, 파독광부, 청계천 여공도 애국자고, 그들이 한 일이 애국이라고 말하고, 그야말로 통합을 위한 연설이었다.
이 또한 미완이긴 하지만, 대통령의 말이 그런 철학으로 중심을 잡고 가야 국민들이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물론 여당과 야당은 정치권력을 위해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고,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국가가 가질 수 있는 희망과 꿈을 국가지도자가 끊임없이 준다면, 국민 통합에도 한발짝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라 무너지는 소리'... 1년새 경제지표, 언론자유, 민주주의 지수 하락
- 나는 자살예방상담사... 무너지지 않으려 이 말을 되새깁니다
- 월 1300만원 받으면서... 21대 국회 '결석왕'을 공개합니다
- [단독] 직고용 체제 벗은 쿠팡... 국토부 "근로여건 관리감독 필요"
- 4년간 나이스했던 집주인인데 나도 당했나?
- 취임 1년 기자회견 대신 '15분 기자실 방문' 택한 윤 대통령
- 엄마가 반한 더덕 무침 양념장의 비밀
- 장혜영 "30대 여성 원내지도부 구상, 당 기득권이 주저 앉혔다"
- 민주당, 가상자산 매각 권유... 김남국 "충실히 이행"
- "윤석열 1년, 역대 어느 정권의 1년보다 길고도 참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