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유업 잇고자 부룬디 한센인 품죠”…손양원 목사 양손자 안경선 선교사
2020년 NGO단체 손사랑브릿지 세우고 마지막 소명 향해
‘사랑의 원자탄’ 산돌 손양원(1902~1950) 목사의 양손자 안경선(63) 선교사가 사무실 창가에 놓인 모형 범선을 가리켰다.
“6·25전쟁 당시 저런 배를 타고 피난 가시려던 할아버지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한센병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를 차마 내버려 두고 떠날 수 없단 생각에 전남 여수 애양원으로 다시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손 목사님이 순교하시지 않고 살아계셨다면 ‘어디서 목회하실까’하고 생각해봤는데 여전히 한센인 곁에 있을 것 같았어요.”
안 선교사는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한센인을 돌보며 사역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이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손 목사의 일화는 유명하다. 안 선교사는 바로 그 양자의 아들이다.
2016년부터 산돌손양원기념관 초대관장을 지내며 목회 말년을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법한데, 안 선교사는 2020년 한센인을 품겠다며 훌쩍 부룬디로 떠났다. 그의 결심이 궁금했다. 막내아들 입대 등을 위해 최근 잠시 귀국한 안 선교사를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이촌로 사단법인 손사랑브릿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손사랑브릿지는 안 선교사가 본격적으로 한센인 사역에 매진하고자 2020년 세운 비영리 단체다.
“2010년 손 목사님 순교 60주년 때 애양원을 처음 찾았어요. 당시 손 목사님과 두 아들의 묘소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 백성을 위로하리라’는 하나님 음성을 들었죠. 10년이 지난 후에야 그 말씀이 할아버지께서 평생 섬긴 한센인을 돌보라는 제2의 소명으로 다가왔어요.”
안 선교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성경 말씀을 되새겼다. 땅끝이 어딜까 생각해보니 사람들 뇌리에서 잊힌 한센인 같았다. 그러다 전 세계 최빈국이라는 부룬디를 알게 됐다. 현지 한센인들은 부룬디 내에서도 버림받은 이들이었다. 안 선교사는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를 고3 겨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게 된 그였지만, 손 목사가 생전 펼친 사역과 사랑 실천은 늘 그에게 숙명처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서울기독대학교에 입학하며 ‘주의 종’의 길에 들어선 이후 전남 해남과 경기도 성남, 중국에 이르기까지 목회 사역에 매진했다. 그러다 5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병상에서 이렇게 죽으면 반드시 주님 앞에 설 테고 살아온 삶에 대한 믿음의 성적표를 내놔야 할 텐데 내놓을 게 없더라고요. 목회할 때는 이 정도면 잘했다는 자부심도 느꼈는데 당시엔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구주를 영접했다는 고백 외엔 다 헛되더라고요.”
그렇게 넘어간 부룬디에서 안 선교사는 숙소에서 4시간 동안 산을 올라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외딴 곳에 모여 사는 한센인들을 찾아다녔다. 한센병은 이른바 ‘나병’, ‘문둥병’으로 성경에도 등장할 만큼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는 한국을 한센병 완치국가로 분류했지만, 전 세계 한센인은 4000만명에 달한다. 이 중 아프리카에만 약 63%인 2500만명이 있다고 한다.
안 선교사는 최근 부룬디 보건복지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마캄바, 루몽게 지역의 한센인 현황 전수 조사를 벌였다. 지난해 9월부터는 한센인 가정과 교회를 일대일로 자매결연 맺고 섬기는 사역을 시작했다. 현지 400여 가정에 매주 한 차례씩 쌀 5㎏과 콩, 팜유 등이 든 ‘만나키트’를 전달하려 한다. 가정당 한 달에 40달러(약 5만원) 정도 드는 비용 마련이 시급하다.
“출애굽의 하나님 백성들이 만나의 기적으로 매일을 살아갔듯이 아직도 낙인과 차별 속에 일용할 양식을 고민하는 한센인 가족에게도 동일한 기적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땅끝에 있는 그들도 모두 하나님의 귀한 영혼입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이 아직 우리 주위에 있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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