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의 KT, 올여름이 가장 뜨거울 것”
KT 롤스터는 스프링 시즌에 13승5패를 기록해 정규 리그를 3위로 마쳤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결승에 진출한 두 팀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 LCK 챔피언에 등극했던 2018년 서머 시즌 이후 최고 성적을 거둔 셈이다.
이번 스프링 시즌은 KT 뿐만 아니라 팀의 미드라이너에게도 의미 깊은 시즌이었다. ‘비디디’ 곽보성은 지난해의 부침을 딛고 ‘슈리마 황제’의 부활을 선언했다. 강력한 라인전과 이를 활용해 팀원에게 도움을 주는 특유의 움직임이 되살아나자 KT의 플레이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9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KT 연습실에서 곽보성을 만나 스프링 시즌의 뒷 얘기를 들어봤다.
-스프링 시즌을 마친 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
“여느 때와 같이 휴식을 취했다. 특별한 활동 없이 충분히 잠을 자고, ‘디지몬 마스터즈’라는 오픈월드 게임을 간간이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2주 전 숙소로 복귀했다. 현재는 솔로 랭크와 스크림을 하며 서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스프링 시즌보다 단단해진 KT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 중이다.”
-스프링 시즌 얘기부터 해보자. 정규 리그와 플레이오프 모두 3위로 마무리했다.
“사실 시즌 개막 전에는 스스로한테도, 팀으로서도 불안한 점이 있었다. 초반엔 4위 완주 정도를 예상했는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팀의 실력이 느는 게 느껴져서 자연스레 자신감이 붙었다. 마지막 결과가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겠단 기대감도 들어서 긍정적으로 본다.
패배한 1라운드 광동전이 나와 팀의 전환점이 됐다. 프로팀들은 각 상황에 따른 플레이를 사전에 약속해놓는데, 그때까지의 KT는 세트 플레이보다 즉흥적인 판단에 의존했다. 문제점이 광동전에서 연거푸 터져 나왔다. 당시에는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패배 이후 팀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기부여도 얻고,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었다.”
-다른 선수의 방식을 카피하지 않고 ‘비디디 스타일’로 회귀한 게 도움이 됐다고.
“나는 2018년부터 ‘쵸비’ 정지훈 선수와 붙어왔다. ‘쵸비’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나머지 선수들과 결이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때는 그의 리플레이를 보면서 그의 스타일을 카피해보려 했는데, 결국 그런 플레이는 ‘쵸비’ 선수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나는 나만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게 정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승 문턱까지 다다랐는데, 플레이오프 4라운드에서 젠지에 져서 아깝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젠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세트를 잡고서 ‘오늘은 이겼다’고 생각도 했다. 돌이켜보면 밴픽에서 우리가 놓친 게 많았다. 당시 플레이에서 나왔던 문제점은 여전히 고쳐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밴픽만 놓고 보면 확실히 단단한 조합, 고밸류 조합이 좋았다.
마오카이와 함께 트리스타나나 크산테, 하이퍼 캐리형 원거리 딜러를 고른 젠지의 판단이 좋았다. 요즘엔 드래곤을 챙겨야 게임을 이길 수 있다. 마오카이는 용 싸움에서 정말 강한 챔피언이다. 초반에 상대한테 주도권을 내줄지언정 2~3용 싸움 시기에 마오카이의 힘이 극대화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리드를 가져오는 젠지의 플레이가 좋아 보였다.”
-그에 앞서 플레이오프 3라운드에서는 한화생명을 잡았다. 준비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한화생명 자체가 두렵단 느낌은 없었는데 ‘빅 게임 헌터’ ‘체력이 좋은 팀’이란 프레임은 조금 신경이 쓰이더라. 나는 특정 선수에게 빅 게임 헌터라는 별명이 붙은 건 그가 체력적으로 뛰어난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화생명이 디플러스 기아를 잡기도 해서 ‘뭔가 있긴 한가보다’ 싶었다. 그래도 막상 경기 중엔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T1에 2대 3으로 석패해서 패자조로 향했다.
“막상 경기 전에는 T1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해서 쉽지 않은 경기를 치르게 될 거로 예상했다. 올해부터는 ‘원 코인’이 있으니까 이기든 지든 많이 배워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우리도 워낙 잘해서 이길 수도 있겠다 싶더라. 5세트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가 시리즈를 잡았다는 확신이 들었는데, 그게 생겨선 안 될 마음가짐의 틈으로 이어진 것 같다.”
-유리한 게임인데 바론 싸움에서 연패해서 T1에 흐름을 내줬다.
“우리가 보기엔 T1이 바론을 소위 ‘막 친다’ 싶을 때가 많다. 불리할 때도 유리할 때도 바론을 쳐서 상황을 바꾸려고 한다. 불리할 때 바론을 치는 건 우리로선 딱히 문제가 안 된다. 그때도 ‘다 잡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게 우리의 마음가짐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결국 집중력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5세트 때 탈리야를 플레이했다. 탈리야는 플레이오프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남겼다.
“T1전 5세트 시작을 앞두고 탈리야 때문에라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탈리야로 승리해야만 다음 상대팀이 밴픽에서 챔피언을 의식할 테니까. 그런데 탈리야만 하면 다 지더라. 젠지전에서도 유리한 게임을 역전당했고…. 아무리 좋은 챔피언이라도 한 번 지기 시작하면 계속 지는 묘한 분위기가 플레이오프엔 있다.”
-다시 T1전 5세트 밴픽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챔피언을 고를 것인가.
“다시 돌아가도 나는 탈리야를 고를 것 같다. 아마 서머 시즌 정규 리그에도 탈리야는 많이 등장할 거고, 많이 이길 것이다. 그리고 아마 플레이오프에서 많이 지지 않을까. 라인 푸시 빠르고, 요즘 나오는 돌진 챔피언들을 카운터 치기에도 좋고, 오브젝트 싸움에서도 강하다. 탈리야는 좋은 챔피언이다.”
-곽 선수는 탈리야 못잖게 베이가를 정규 리그 막바지부터 선호했다.
“요즘 자주 등장하는 챔피언들 상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베이가는 라인전이 세다. 스택형 챔피언이지만 나는 베이가를 중후반에 힘을 발휘하는 챔피언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사악한 일격(Q)’의 쿨 타임이 짧고 마나 소모량도 적다. 사거리도 긴 편이다. 딱히 약한 타이밍이 없는 챔피언이라 생각했다.”
-KT가 서머 시즌에 우승을 노리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더 안정적인 팀으로 거듭나야 한다. 너무 안정적이기만 해도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수동적인 팀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둘 수 있는 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뻔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뻔한 플레이를 당해주면 안 된다. 라인전은 이미 충분히 잘하는 팀이다.
모든 라인의 상황을 시시각각 체크하면서 ‘상대가 할 플레이는 A밖에 없구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팀마다 다른 개성도 파악해야 한다. 가령 젠지는 정규 리그 때 사이드에 붙는 플레이를 선호했다. ‘여기에는 없겠지?’ 하고 들어가면 상대가 있더라. 대회 경기를 꾸준히 챙겨보면서 팀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스프링 시즌 경기를 되돌려 보면서 팀마다 개성이 있고, 대체로 그 색깔대로 플레이한단 인상을 받았다. 젠지는 늘 젠지처럼, T1은 늘 T1처럼 플레이했다. 요즘엔 팀마다 전력 분석관도 있지 않나. A선수는 특정 타이밍에 와드를 어떻게 설치하는지 같은 데이터를 미리 받고, 머리에 넣어놓은 뒤에 경기를 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연습 시간에 리플레이를 자주 챙겨보는 이유가 있나.
“나는 예전부터 솔로 랭크 연습만큼이나 대회 리플레이를 챙겨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리플레이를 보는 게 실력 향상의 지름길이다. 대회와 스크림은 다르다. 소극적인 플레이가 나올수밖에 없다. 선수의 눈에는 다른 선수가 실전의 부담감 때문에 스크림과 다른 플레이를 하는 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건 대회 리플레이를 봐야 실전에서의 구도 정립에 도움이 된다.
올해는 아지르 대 사일러스, 아지르 대 아칼리 구도가 자주 나왔다. 다른 선수들의 리플레이를 보며 구도 해석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솔로 랭크 리플레이도 잘하는 선수들, 가령 ‘쵸비’ 선수 대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궁금한 구도로 대결할 땐 챙겨본다.”
-올해 인상 깊게 본 다른 선수의 리플레이가 있다면.
“아지르 대 사일러스 구도에서 ‘쵸비’ 선수의 플레이를 주의 깊게 봤다. 나는 이 구도에서 아지르가 초반에 반반 라인을 만들면 사일러스한테 스킬 콤보를 맞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이때 체력이 많이 깎여나가면 아지르가 주도권을 상실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라인을 밀면서 거세게 압박하면 세 번째 웨이브가 도착할 때쯤 정글러의 갱킹에 노출돼버린다.
‘쵸비’ 선수가 리브 샌박과의 1라운드 경기에서 이 구도를 두 번 했다. 그는 딱히 라인을 밀지 않더라. 또는 빠르게 첫 두 웨이브를 정리해서 세 번째 웨이브를 당기는 라인으로 만들더라. 사일러스가 스킬로 미니언을 잡게끔 강제해서 마나도 소모시키고. 그렇게 해서 라인전을 안정적으로 풀어나가는 걸 보고 ‘내가 너무 고정관념에 틀어박혀 있었구나’ 싶었다. 이런 것들을 배우는 데 리플레이 공부가 도움이 많이 된다.”
-서머 시즌이 내달 초 개막한다. KT가 롤드컵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스프링 시즌 종료 직후엔 우리가 반드시 롤드컵에 갈 수 있단 확신이 들었다. 당장 T1과 젠지 외에는 두려운 팀이 없다. 지금은 시즌 종료 직후만큼 자신감에 차 있는 게 아니긴 한데.(웃음) 그래도 여전히 롤드컵 진출은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T1·젠지보다 한 끗이 부족했던 만큼 서머 시즌에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클 듯하다.
“다른 팀들이 T1이나 젠지 상대로 아깝게 패배하면 ‘조금만 더 잘했으면 이겼을 텐데’ ‘한 끗 차이로 졌네’ 하는 얘기가 나온다. 나는 그 한 끗 차이가 많은 이들의 생각보다 아득하다고 생각한다. 그 좁히기 어려운 한 끗이 팀들의 순위와 우열을 갈라버린다. 나는 나머지 8개 팀 중 KT만이 그 한 끗 차이를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면.
“시즌 동안 피드백을 정말 ‘빡세게’ 했다. 그러고서 경기에서 이기니까 만족감이 배로 돌아왔다. 많이 이기니까 ‘나 여전히 게임 잘하네’ 생각이 들더라. 스프링 시즌은 귀갓길이 행복했다. KT는 예로부터 ‘서머의 KT’로 불려왔다고 들었다. 올해 서머의 KT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를 수 있게 노력할 테니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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