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하러 왔다가 헌병대에 끌려간다?

백창범 2023. 5. 1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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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캄보디아 동남아시안게임 주최측 횡포... 한국 중계팀 항의하며 계약 이행 요구

[백창범 기자]

                   
 제32회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s)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개최지인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한 안전요원이 대회 간판과 마스코트를 준비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처음 개최되는 이번 대회는 오는 17일까지 열리며 아세안 회원국들과 동티모르 등 11개 나라의 선수들이 출전한다.2023.5.4
ⓒ 연합뉴스
 
                                               
동남 아시아인의 축제 제32회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s)이 지난 5일 캄보디아에서 개막했다. '동남 아시아인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이 대회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맡은 박항서 감독의 2연패 달성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대회다.

캄보디아의 동남아시안게임 개최는 대회가 시작된 지 64년 만에 처음이다. 그만큼 캄보디아에는 역사적인 대회로 훈센 총리는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훈센 총리의 의도와 달리 캄보디아 정부는 동남아시안 게임의 대내·외적인 영향력과 성공적인 대회 개최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현재 스포츠 중계 업체인 '산그리다'를 비롯해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한국의 스포츠 중계팀이 동남아시안게임의 주관 방송(HB, Host Broadcasting)을 맡았다. 메인 송출 장비와 축구 등 메인 종목 11개를 라이브로 11개국에 중계 방송하는 매우 중차대한 역할이다.

그러나 캄보디아에 입국해 있는 100여 명 한국인 방송 스태프는 높은 퀄리티의 중계는 물론이고 노하우를 캄보디아에 전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의 장비 반출을 불허한다며 헌병대에 잡혀갈 수 있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 캄보디아 국영 스포츠 TV인 CSTV와 맺은 계약서에 명시된 미지급분에 대해 정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CSTV는 얼마 전 캄보디아에서 사망한 고 서세원이 투자했다는 방송국이기도 하다.

후진국 리스크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돈도 안 주고, 방송을 제대로 안 하면 장비를 빼앗고 헌병대를 동원하겠다는 협박을 한다. 미지급분에 대해 이렇게 당당한데 이미 지급할 날짜가 지난 2차도 담보할 수 없고, 마지막 3차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IBC(International Broadcasting Center)에 장비가 들어왔을 때 캄보디아 관계자 모두 신기해하고 기뻐했다. 4월 29일 첫 축구 방송 하는 날 한국의 높은 퀄리티의 축구 방송을 모두 칭찬했다. 총괄 책임자로서 방송을 더 잘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며 협박까지 하니 어이가 없다. 

이번 캄보디아 동남아시안게임은 동남아인들에게도 단연코 인기 스포츠인 축구, 배구를 포함해 15개 종목(16개 Feed)을 라이브로 방송한다. 대한민국이 '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통해 큰 도약을 이뤘듯 캄보디아 역시 첫 종합대회인 동남아시안게임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인데 캄보디아의 이런 행보는 아쉽기 그지없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대규모 국제 대회를 치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황당한 사고를 치고 있다. 대회 한 달 전에 이미 판매된 방송 중계권을 무상화한다고 발표해 혼선을 주었고, 이미 중계권료를 납부한 베트남 방송사에는 돈을 돌려주지도 않고 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한국 방송팀이 커버하는 11개 종목 이외 4개 종목 라이브 방송을 담당하는 말레이시아 제작사에도 계약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구두상으로만 계속 준비해왔던 말레이시아 제작사는 장비와 방송팀이 이미 캄보디아에 입국해 있었다. 현재 캄보디아 로컬 방송사가 제작하고 있지만, 그래픽이 나오지 않는 등의 낮은 퀄리티로 RHB(방송권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대회 성화가 계속 꺼져있는가 하면, 경기 일정을 마음대로 변경하고, 대회 인포메이션 시스템도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전원이 수시로 나가고, 통신도 언제 끊길지 모른다. 국제 신호에 대한 모든 스탠더드 룰을 무시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 참여한 한국 중계팀은 대한민국 스포츠 중계 국가대표라는 마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6개월 동안 준비했다. 동남아인들의 스포츠 축제에 국위선양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한 국가를 넘어서 동남아를 대표하는 스포츠 축제의 개최국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엉망일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대회 중계 총괄 업체인 산그리다는 10일 CSTV에 1차 미지급분의 정산과 2, 3차 지급분에 대한 확실한 정산을 요구하는 3차 최고장을 보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 중계팀은 계약서에 근거해 5월 11일 밤 11시부로 방송 제작을 중단한다고 캄보디아 정부와 대회조직위원회에 통보한 상태다.

미지급분에 대한 정산을 받지 못하고, 장비 및 안전에 대한 협박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대회 개최라는 대의만을 위해 더이상 한국의 중계팀이 희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한국 방송인들은 여전히 동남아시안 게임이 성공적으로 끝나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11일 밤이 지나면 캄보디아는 HB 서비스가 없는 스포츠 종합대회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 필자 소개: 백창범은 MBC PD 출신으로 이번 대회 HB 총괄을 맡아 IBC와 대회 중계 전반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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