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살예방상담사... 무너지지 않으려 이 말을 되새깁니다

대전광역시노동권익센터 2023. 5. 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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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우울을 매일 듣다보니... '최선을 다했나' 반문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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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나은총씨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대전광역시노동권익센터 기자]

 자살예방팀에서 일하던 선배는 진심 어린 위로를 하던 사람이었다
ⓒ 픽사베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아파트 난간을 붙잡고 울던 그녀는 선배의 진심 어린 위로로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그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자살예방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선배였다. 내 눈에는 TV에 나오는 유명한 의사보다 훨씬 더 멋져 보였다. 그랬던 선배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다가 일을 그만뒀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팀에 처음 입사했을 때 선배를 졸졸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 처음 했던 상담은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이 사람의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목소리가 떨렸다. 옆에서 상담을 지켜보던 선배는 대상자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함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연계해 줬으며,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선배는 항상 열정적이었다.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자살예방사업을 진행했으며, 어떻게 해야 미리 발견해서 도움 줄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퇴근해서도 지구대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연락이 오면 망설임 없이 나가서 상담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선배에게 존경심이 생겼다.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협박에 무너진 순간

경계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은 대상자가 갑자기 연락이 왔다. "남자 상담사를 원한다"라고 요청해 내가 담당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폭행하며 자신의 인생이 힘든 이유가 남편과 주변 남자들 때문이라며 죽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불이 났는지 119구급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자신을 병원에 넣으려고 경찰에 신고한 게 아니냐"라며 화를 내고 죽어버리겠다고 소리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함께 달려 나갔다. 매우 흥분한 모습의 대상자를 진정시키려 하자 소리치며 도망쳤다. 경찰과 119구급대원들을 불러 말리려고 했지만, 그는 뒷걸음질 치며 자해했다. 좁은 골목과 뒷산으로 계속 걸으면서 "내 남편이나 가족에게 전화하면 지금 당장 죽어 버린다"라며 4시간 동안 경찰과 119구급대원을 피해 한없이 걷다 뛰다 반복하며 도망 다녔다.

나도 그녀를 막기 위해 4시간 동안 걸었다. 그녀는 산 중턱 낭떠러지를 등지고 섰다. 내 구두는 진흙으로 범벅이 됐고 외투에는 도깨비 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다가가려 하자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했다. 계속되는 걸음과 뜀박질로 몸이 지쳤다. 하지만 제일 힘든 건 "오늘 내가 죽으면 너 때문이야"라고 소리치며 울부짖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저 자신의 힘든 마음을 표현하는 거라 생각했다. 우선 죽음을 막아야 하니 최선을 다해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하지만 점점 내 마음속에도 불만이 생겼다. 아무리 위로해도 그녀의 팔목에서 이미 피가 흘렀고, 한 발자국만 뒤로 가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기에서 내게 화내고 욕하며, 그만 쫓아오라며 화만 냈다. 계속 대치하던 어느 순간에 내 마음속에서 작은 악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살예방 상담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상대방을 책망하는 체념의 소리였다.

누군가를 살려야 하는 내 마음속에서 들린 목소리에 누구보다 내가 놀랐다. 다행히 경찰의 제압으로 상황이 종료됐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평소처럼 퇴근을 위해 직장으로 복귀했다. 감정이 요동쳤다. 죽어가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던 내 마음에 그녀를 책망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선배는 이런 날 위로했다. 화내고 욕하고 짜증을 내는 사람과 상담하다 보면 당연히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생각을 계속 가지지 말고 나쁜 생각이 든 걸 슬퍼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죽음을 시도하는 누군가를 함께 살려보자고 격려했다. 종종 버거운 마음이 드는 감정노동자였지만 선배와 일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행복했다.

'최선을 다했나'라는 질문의 함정
 
 경계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은 대상자는 나를 협박하며 울부짖었다
ⓒ 픽사베이
 
그러던 어느 날, 퇴근 직전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한 아파트에서 자살시도자가 있었으며,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선배는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연락해 보자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다음날 소방서에서 한 유가족에게 상담이 필요하다며 연락이 왔다. 마침 전날 받지 않은 전화와 같은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선배가 당황하며 "어제 전화한 사람이랑 같은 사람일까?"라고 물었다. 선배는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분을 살리지 못했다"라며 자책하고 슬퍼했다.

선배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상담을 진행하고 퇴근할 걸 그랬다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자책했다. 난 그런 선배를 위로했다. 법적으로 근무일 기준 3일 안에만 연락을 취하면 된다고, 당초 연락이 늦게 왔고 선배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위로했다.

그런데 2시간이 지나고 소방서에서 연락이 왔다. 확인해보니 사망한 분은 어제 경찰에서 의뢰됐던 대상자가 아니었다. 그제서야 선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초가 흘렀을까… 선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절대로 안도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선배와 난 막지 못했다. 선배는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죄책감에 벗어나려고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라며 흐느꼈다. 선배는 자신의 감정을 아무리 난도질당해도, 누군가를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버텨왔지만, 그마저도 한순간에 깨져버린 것이었다.

결국 선배는 회사를 그만뒀다. 나는 막을 수 없었다. 우리 모두 너무 큰 감정노동을 하며 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죽을 만큼 힘든 아픔을 공감하고 도와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은 알았기에 선배의 퇴사를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도 선배가 됐다. 나도 후배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최선을 다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도와주고, 공감해주라고... '최선을 다했나?'라고 생각하다 보면 최선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자책하고,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고 말이다. 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함께하고 돕자고 말한다.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난 이 구절의 뜻은 네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네 몸을 먼저 사랑하라는 걸로 느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 아닐까.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네 몸을 먼저 사랑하라고, 내 몸과 감정을 해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그들이 소중한 만큼 여러분도 소중하다고, 그리고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감정노동자인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 사랑이 넘쳐흘러 이웃에게 그 사랑을 전달하는 당신이 되길 그리고 당신의 삶에 평안함이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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