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4·3발언'부터 최고위원 사퇴 쐐기 박은 '녹취 유출' 파문
'김구 선생 폄하 발언'
'JMS 민주당' 페이스북 게시글 등 설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당 윤리위원회 징계 결정을 앞두고 최고위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제주 4·3사건’으로 논란이 된 지 약 3개월 만이다.
태 의원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2월 전당대회 레이스부터 시작됐다. 전당대회 제주 합동연설회에서 태 의원이 ‘4·3 사건은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하면서다. 4·3 사건은 2003년 정부가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으로 규정한 바 있다. 북한 지시설은 일부 극우단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에 유족들과 4·3 사건 단체 등으로부터 ‘사실 왜곡’, ‘색깔론’이라며 태 의원을 비판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태 의원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13.1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지도부에 입성했다.
다시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달 17일이다. 태 의원이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불거진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쓰레기(Junk) 돈(Money) 성(Sex)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이라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가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당시 태 의원은 “보좌진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는 “의원실 보좌진들은 자체 회의에서 해당 메시지를 업로드하기로 결정하고 저에게 최종 확인을 요청했다”며 “하지만 최종 확인 단계에서 ‘비공개’로 보고돼야 할 메시지가 실수로 ‘전체 보기’ 상태로 공개됐다”고 설명했다.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조치까지 염두에 둔 듯 태 의원은 “당 누를 끼친 데 대해 죄송스럽고 사과드린다”며 “당의 어떠한 조치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하루 만에 다시 ‘김구 선생 폄하’ 논란 휩싸였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 의원이 지난달 18일 공개된 월간조선 인터뷰를 통해 “지난 구정에 KBS ‘역사저널 그날’ 프로그램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김구 선생은 마지막까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 암살됐다는 식으로 역사를 다룬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북한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걸 봤을 때에는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어 “김일성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 공산 정권을 세우기 위해 김구 선생을 이용했다. 그런 북한의 전략까지 알려줘야 정확한 비교가 되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야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허은아 의원은 태 의원의 발언이 국민의힘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허 의원은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1년도 안 됐다. 지난해 백범 김구 선생 서거 73주기 때, 우리 국민의힘은 수석대변인 논평으로, ‘김구 선생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으려 생을 마치실 때까지 통일을 위해 노력하셨고,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고자 했던 김구 선생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당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80여년 전 김구 선생의 통일 노력이 ‘김일성에게 이용당해서 한 것’이라면, 21세기 국민의힘도 김일성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인가”라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이런 망언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당 지도부는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방관만 하고 계실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에 김기현 당대표는 태 의원을 직접 만나 언론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과 중도층의 지지율이 답보하는 상황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이 이미 여러 발언으로 비판을 받고 있었던 만큼 태 의원이 국민의힘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잇단 설화에 ‘쐐기’를 박은 것은 대통령실 공천 개입 논란을 부른 ‘녹취 유출 파문’이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이 태 의원에게 총선 공천을 거론하면서 한일관계 옹호 발언을 요청했다는 녹취록이 지난 1일 공개됐기 때문이다. 태 의원과 이 정무수석은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했으나 당 안팎에서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논란이 확대됐다.
당 윤리위는 지난 1일 태 의원에 대해 JMS 관련 페이스북 글 게시, 제주 4·3사건 발언을 사유로 징계 절차를 개시한 데 이어 3일에는 김 대표의 요청으로 녹취록 논란도 병합 심사하기로 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태 의원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지난 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기간 제가 언급했던 4·3 관련 발언을 시작해 최고위원이 된 후에도 여러 역사적 평가와 관련한 발언이 후 매일 사퇴하라는 정치적 공세와 ‘태영호 죽이기 집단 린치’가 각 방면으로 펼쳐지고 있다”며 “저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꺾으면 꺾일지언정 굽히지는 않겠다”고 외쳤다.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전날 밤부터였다. 태 의원이 최고위원들이 함께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말없이 나간 것이다. 하루가 지난 이날 오전 9시에는 언론에 기자회견을 공지했고, 오전 10시에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태 의원은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미력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두 달 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원들로부터 선택을 받아 최고위원에 당선됐다”며 “그러나 저의 부족함으로 최근 여러 논란을 만들어 국민과 당원들, 당과 윤석열 정부에 큰 누를 끼쳤다”고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기자회견 후에도 사퇴 배경에 대해 “지난 이틀간 정말 많은 고민을 하면서 불면의 밤을 보냈다”며 “오늘 사퇴하는 것만이 지금 시점에서 당과, 정부, 당원들의 기대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사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태 의원의 자진 사퇴는 윤리위 징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윤리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주혜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태 의원이 정치적 책임을 지려고 한 자세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늘 징계 수위 결정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윤리위는 지난 8일 회의에서 징계 수위를 결정하려고 했으나,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해 결정을 이날로 연기했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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