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체계로 본 간호법 갈등...방관한 복지부의 책임 크다[박한슬이 소리내다]

박한슬 2023. 5. 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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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싸고 의사 및 간호조무사 단체와 간호사 단체가 대립하고 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다시 대규모 의사 파업이 예고됐다. 2020년에 장기간 이어진 의사 파업 이후로는 3년 만이다. 2020년의 파업이 여러 의제가 복잡하게 뒤섞인 항의성 실력 행사에 가까웠다면, 이번 파업은 보다 목적도 뚜렷하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맞선 간호사협회도 거부권 행사 시의 맞불 파업을 거론하고 있다. 대체 간호법이 뭐길래 이런 심각한 갈등이 초래된 것일까?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행 간호법안만이 아닌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을 같이 짚어봐야만 한다.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 반발해 3일 보건복지의료연대가 부분파업에 나섰다. 서울의 한 의원에서 단축 진료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건보 재정을 분배하는 네 개의 손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의료는 국민건강보험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전 국민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가 모여서 건보 재정이 형성되고, 이 금액이 전국의 의료기관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나 정형외과에서 일하는 방사선사도 건보에서 나온 돈으로 월급을 받는다. 내과에서 일하는 임상병리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들은 건보에서 직접 돈을 받지는 않는다. 건보에서는 이들이 일하는 의료기관으로 청구된 금액을 줄 뿐이며, 이들을 고용한 병원장이 그렇게 얻은 수익을 이들에게 각각 얼마나 분배할 지를 결정하는 식이다. 일반 기업으로 따지자면 사용자인 사장과 근로자인 사원 관계다.

현재 이런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직업은 실질적으로 4개 뿐이다.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와 약국을 개설할 수 있는 약사다. 그런데 뒤의 세 직업은 종합병원급의 대형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하진 않으니, 실질적으로 다수의 보건의료인을 고용하는 중견기업 사장 정도의 자리에 오르는 건 의사가 유일하다. 이런 구조에 건보에서 의료 행위를 건당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가 결합하니 문제가 생겼다. 건보에서 돈을 받으려면 여기서 인정하는 의료행위를 해야만 하는데, 건보에선 의사의 의료행위 정도에만 별도로 가격을 매길 뿐 다른 인력이 제공하는 의료행위는 무시하고 있어서다.

예컨대 간호사가 입원환자에게 약을 복용케 하고, 환자의 체온과 혈압을 확인하는 등의 활력 징후 기록을 하는 행위는 건보에서 별도의 ‘의료행위’로 인정 받지 못한다. 환자를 제대로 간호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입원환자 당 간호사 수에 따라 입원료만 차등적으로 책정될 뿐 세부적 내용은 아무런 관심 사항이 아니게 되는 구조다. 의사가 수행하는 외과적 상처 봉합 수술은 상처 부위의 크기에 따라 cm 단위로 가격이 책정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그러니 철저한 경영자 관점에선, 간호사의 간호 업무의 숙련도나 성실도에 따라 비용을 차등 책정할 유인이 전혀 없다. 애초에 포괄로 묶인 금액만 건보공단에서 받는 구조니, 입원한 환자 수에 맞는 간호사의 머릿수만 채우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정책이 수십 년 이어진 결과는 어떨까.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 및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4월 27일 국회 앞 계단에서 간호법안 제정안 통과를 환영하고 있다. 뉴스1


간호법은 반쪽짜리 독립선언


코로나19로 인한 통계적 혼선을 배제하기 위해 2019년 자료를 살펴보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52.6%는 5년 차 이하 경력자였다. 바꿔 말하자면 간호사 중 5년 이상 일한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고, 새로 들어오는 신규 간호사들도 여러 이유로 몇 년 안에 병원을 퇴사한다는 뜻도 된다. 가뜩이나 한국 간호사들은 미국에나 일본 간호사에 비하면 2~3배 정도 많은 환자를 보는 데다, 3교대 근무를 지속하다 보면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찾아온다. 이런 문제점은 오래 지적돼 왔고, 보건복지부에서도 여러 차례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는 하지만 실효성이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간호사협회가 이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바로 간호법 제정이다. 현재는 의료법상 규정되어 있는 간호사의 업무와 처우에 대한 내용을 별도의 법안인 간호법으로 분리·독립시킨 다음 자체적인 관리를 꾀하겠다는 게 간호사협회의 생각이다. 특히 이번 간호법에서 간호사의 업무 가능 영역을 ‘의료기관과 지역사회’로 확대한 점, 교육전담간호사와 같은 실질적인 간호사 업무 부담 경감을 위한 추가적 인력 고용을 명시한 점을 봤을 때 이는 간호사의 독립 선언에 가깝다.

가령 지역사회에서 방문간호 등을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간호사가 직접 건보공단에서 수령한다면 의사와의 협상을 통해 제 몫을 받아내는 지루한 갈등을 겪을 필요가 사라진다. 실질적인 ‘사장’으로서의 독립 쟁취다. 비슷한 일이 병원 내에서도 이루어진다면 현재와 같은 간호사 처우는 바뀔 여지가 매우 크다.

문제는 간호사만의 독립 시도가 의사의 업무 지시를 받는 다른 모든 직역과 갈등 관계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이다. 병원이 받는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간호사만 독립해 의사와 같이 건보 재정 분배 테이블에 앉는다면 어떨까. 간호사는 식탁에 앉아 제 몫을 충분히 챙기겠지만, 의사에 딸린 다른 식솔들은 본인들이 가져올 파이가 더 줄어든다. 평소 같으면 의사 단체와 갈등을 빚을 간호조무사협회, 응급구조사협회, 임상병리사협회 같은 13개의 의료 관련 직종이 의사들과 합을 맞춰 간호법 입법을 제지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정 투입이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간호사들만 본인 몫을 더 챙기겠다는 시도가 본인들에게 상대적 손해를 끼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호사만의 독립이 전체 의료 체계의 조화는 고려치 않은 반쪽짜리 독립선언인 이유다.


간호사 어려움 방관만 한 복지부


이런 극한 대립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간호사 단체가 아닌 보건복지부다. 간호사협회가 간호법을 별도로 제정하려는 시도만 이미 15년을 넘겼고, 그때마다 명분으로 나오던 간호사 처우 개선이 그간 계속 후순위로 밀려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존 체계 내에서 20년 가까이 변화를 모색하던 상황이 번번이 좌절되던 중,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겪었다. 간호사의 업무 강도가 폭증하는데도 “고맙다”라는 말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 대선 이후까지도 이어졌고, 겨우 당선 1년을 넘긴 시점의 대통령에게 거부권이라는 부담스러운 선택을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정말 간호사협회나 거대 야당만의 책임인가? 간호사들의 불만을 20년이나 방치한 주무 부처의 책임이 훨씬 크다.
조규홍(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의 단식 현장을 찾았다. [사진 보건복지부]


간호사 지원금 줬지만 간호사에겐 가지 않아


간호법 제정이 가시화되자 급하게 복지부에서 발표한 간호사 처우 개선 대책도 별다른 알맹이가 없긴 마찬가지다. 간호법의 입법 가능성을 낮잡아 보고,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던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기존에 논의된 대책을 구체적 내용도 없이 발표한 게 전부인데, 이런 부실 행정은 구체적인 실패 사례가 이미 잔뜩 쌓여 있다. 예를 들어 2019년부터 건보 공단에선 야간근무 간호사에 대한 추가 비용을 병원에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돈을 받는 건 병원이고, 병원에선 늘어난 수입을 간호사 임금으로 꼭 이전시킬 의무가 없어 그 돈이 정작 간호사에게 가질 않았다. 간호사 추가 채용이나 처우 개선은 없이 병원 배만 불린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겪고도 또 말만 믿을 사람이 있을까.

요즘 상황을 보며, 저소득층 아동 복지를 위해 바우처(voucher) 제도가 도입된 이유를 자주 곱씹는다. 목적이 정해진 바우처보다 사용이 편리한 현금을 주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지만, 현금의 사용이 너무 편리한 탓에 그 돈은 아동 복지를 위해 쓰이지 않고 무책임한 부모의 유흥비로 탕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불편하더라도 목적에 맞는 비용에만 쓰이도록 ‘꼬리표’가 달린 바우처가 지급되기 시작한 것인데, 의료라고 상황이 다를까. 비단 간호사만이 아니다. 기피 과에 주어지는 지원금이 다른 인기 과의 의료기기를 사는 데 전용되고, 되레 그런 과는 병원 운영을 지속할수록 적자를 본다며 필요한 간호인력도 제대로 배분 받지 못한다. 돈 잘 버는 과에 우선순위가 밀려, 의사의 업무 강도만 늘어나게 되는 식이다. 한국 의료의 흔한 풍경이다.

물론 현행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이런 식의 파격적 시도가 어려운 건 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엔 임기 당 1.5번 정도 행사한 것이 전부인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만 정부 부처가 전적으로 기대는 것도 파격적이긴 마찬가지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큰 선택을 요청하기 전에, 복지부가 할 만큼 해보긴 한 게 맞는 걸까.

박한슬 약사 출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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